하지만 사람들은 빛을 보고도 빛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9-10) 라고 한 대로입니다. 그 말씀이 말씀대로 직접 나타나서 그 민족에게 보였지만, 예정된 나라에 예수께서 오셨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볼 때,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의 대화 중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면 우리도 소경인가?”라고 묻자, 예수께서는 “차라리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더 나을 뻔했다.”고 하셨습니다. (요 9:39-41 참조) 빛에 대해서 증거하는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했던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큰 잘못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하신 많은 말씀들 중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하신 내용들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에는 예고가 없습니다.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는 때에 갑자기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중에 “그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막 13:19) 하신, 아주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세계 역사 속에 전쟁들이 그렇게 많이 일어났다가 끝이 났고 또 앞으로 일어날 것인데,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그런 환난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떤 전쟁인지는 모르지만 거대한 버섯구름을 일으키는 원자탄이 터지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전쟁이 일어날 것을 성경은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고 말씀하셨던 예수께서 그 입을 통해서 세계 운명의 날이 올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4절부터 읽겠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14-23절)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전쟁은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전쟁입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그 전쟁의 날들을 감하지 않으신다면 육체가 구원을 얻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택하신 백성”이라는 말을 두고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우왕좌왕하며 방황해 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택하신 백성”이 자신들을 뜻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서로 자기들이라고, 자기 단체라고, 자기 교파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의 “택하신 백성”은 단 한 백성, 바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 한 백성의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세계에 흩어져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 왔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유대인에게 또 닥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이 밴 자들에게,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그때 사람들에게 경고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 속에 필요했던 말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 내용을 읽고 경각심을 갖도록 하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한 민족에게 닥칠 운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환난은 천지창조 이후로부터 없었던 환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지창조 자체를 믿지 않고 모든 것이 저절로 된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예언의 말씀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고, 어리석어서 못 믿는 사람도 많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못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떻든지 자기와 상관없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날이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 임한다고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눅 21:35 참조)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막 13:31, 눅 21:33) 하신 말씀도 한번 눈여겨보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들을 미루어 볼 때, 먼저 읽은 마태복음의 내용은 아주 순하게 기록되었지만 그 내용 속 깊숙이에는 세계가 전율을 느낄 만한 사실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날이 선 칼이 무엇이든지 잘라 버린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어린아이에게 칼을 주면 어디를 찌르든지 무엇을 자르든지 마음대로 할 것입니다. 칼날의 위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도 이처럼 부드럽게 기록되었지만,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히 4:12 참조) 하나님의 이 말씀은 분명히 무언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마태복음 17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9절)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선 것을 본 베드로는 크게 놀란 나머지 이 세 사람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생각에 예수님은 그 시대에 현존하는 인물이었고, 엘리야는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는 옛날 전설 속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의 역사인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람이었습니다.
또 모세는 자기 동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영도자로서,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고는 모압 땅에서 세상을 마친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영웅들이 예수 옆에 선 것을 보았을 때, 베드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예수와 엘리야와 모세, 그 세 사람을 떠받들어 초막 셋을 짓고 모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렇게 말했을 때, 구름 속에서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구분을 지어 주셨습니다. 예수에게 초점을 두도록,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 17:5) 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나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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