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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67회
마태복음 17:1-8
2002. 6. 22. 강연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태복음 17:1-8)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성경에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고전 9:26)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운동 경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한 가지 때문에 사람들이 저렇게 기뻐하고 열광하는구나. 경기에서 이기면 기쁘고 좋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나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끝까지 다 달려갔을 때 오는 그 허탈감은 성경이 가져다주는 위안과 차이가 있다. 없어지지 않는 큰 기쁨과 만족을 채워 주기 위해 세상에서 우리의 할 일이 상당히 많다. 많은 영혼을 스쳐 갈 수 있는 참된 빛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참 책임이 크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고 했습니다. 어떤 목표가 있을 때 합심하는 것은, 그것이 잘되든 잘못되든 모두에게 승리감을 안겨 주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영광의 함성이 계속 울려 퍼지기를 바라며 그것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저는 요즘 성경을 읽으면서 빛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 1:9) 라는 말로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요일 1:7 참조) 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3) 라고 하며 창조 처음부터 빛에 대한 말씀들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빛에 대한 표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 제일 끝에 가면 환한 빛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나는 그 광채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계 22:3-5 참조)
오늘날 무수한 과학자들이 이루어 놓은 결과를 생각해 봅시다. 빛이 있기에 전광판도 있을 수 있고, 전파도 작용합니다. 위성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없다면 우리가 가진 휴대폰은 쓸모가 없게 됩니다. 무선이든 광선이든 유리섬유든, 모두 빛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빛이 모든 것을 단축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빛이 원래 빛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빛의 결과만 논하게 만든 것입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고후 4:3-4)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사탄이 어떤 작용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는 말씀처럼 (고후 4:6 참조), 그 빛은 창조자와 인간을 가장 가깝게 만들어 놓습니다.
과학자들은 빛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논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통과하는 빛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서로 연결하고, 또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기 위해 인간에게 빛을 허락하셨습니다. 인간 역사에서는 그 빛의 작용에 대해 열심히 연구해야만 겨우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데, 성경은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그 빛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영광의 복음의 빛이 사람의 마음에 비췬다는 것을, 또 이 빛을 받은 사람들의 교제 관계에 대해서 말씀으로 기록했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언가 의미심장한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두운 가운데 무언가 번쩍하는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성경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고 말씀하신 대로 밝게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빛이 없는 어두움 속에서는 상대방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곤충들이 빛을 보고 달려드는 것 이상으로 사람의 마음도 빛을 향해서 갑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5-7)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실 때, 빛으로 시작해서 빛으로 교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빛이 나타나 모두를 끌어가실 것입니다. 여러 종교나 철학에서 많은 이론을 전개하지만, 이 우주에 어떤 광채가 있었고 그 광채로 인해서 사람들이 들려 간다고, 성경만큼 정확하게 표현한 곳은 없습니다. 이것은 흔한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아주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두 눈을 뻔히 뜨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러 쫓아다니던 사람이 어느 대낮에 굉장한 빛을 보고 쓰러져 눈이 잠시 멀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훗날 이름이 바울이라고 바뀐 사울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일생 동안 그 빛을 찾아갔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빛 앞에서 모두가 한 번은 다 조용해질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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