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무수한 과학자들이 이루어 놓은 결과를 생각해 봅시다. 빛이 있기에 전광판도 있을 수 있고, 전파도 작용합니다. 위성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없다면 우리가 가진 휴대폰은 쓸모가 없게 됩니다. 무선이든 광선이든 유리섬유든, 모두 빛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빛이 모든 것을 단축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빛이 원래 빛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빛의 결과만 논하게 만든 것입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고후 4:3-4)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사탄이 어떤 작용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는 말씀처럼 (고후 4:6 참조), 그 빛은 창조자와 인간을 가장 가깝게 만들어 놓습니다.
과학자들은 빛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논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통과하는 빛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서로 연결하고, 또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기 위해 인간에게 빛을 허락하셨습니다. 인간 역사에서는 그 빛의 작용에 대해 열심히 연구해야만 겨우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데, 성경은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그 빛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영광의 복음의 빛이 사람의 마음에 비췬다는 것을, 또 이 빛을 받은 사람들의 교제 관계에 대해서 말씀으로 기록했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언가 의미심장한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두운 가운데 무언가 번쩍하는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성경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고 말씀하신 대로 밝게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빛이 없는 어두움 속에서는 상대방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곤충들이 빛을 보고 달려드는 것 이상으로 사람의 마음도 빛을 향해서 갑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5-7)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실 때, 빛으로 시작해서 빛으로 교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빛이 나타나 모두를 끌어가실 것입니다. 여러 종교나 철학에서 많은 이론을 전개하지만, 이 우주에 어떤 광채가 있었고 그 광채로 인해서 사람들이 들려 간다고, 성경만큼 정확하게 표현한 곳은 없습니다. 이것은 흔한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아주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두 눈을 뻔히 뜨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러 쫓아다니던 사람이 어느 대낮에 굉장한 빛을 보고 쓰러져 눈이 잠시 멀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훗날 이름이 바울이라고 바뀐 사울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일생 동안 그 빛을 찾아갔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빛 앞에서 모두가 한 번은 다 조용해질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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