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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그림자

2005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2005. 12. 26. 오후 강연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1-4)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베드로전서 1:10-11)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앞서 우리는 아브람이 하나님께 언약을 받고 그 약속에 대한 표시로 하나님께서 짐승을 불태우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아브람은 자기 부인 사래의 말을 듣고 아들을 낳았는데, 성경은 그 아들을 종이라 칭했습니다. 그 과정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새 이름으로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래도 사라라는 새 이름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어 나가다 보면 구약에 나타나는 유대인의 위치, 율법의 위치, 그리고 유대인과 하나님의 관계, 이 모든 것이 신약 시대에 사도들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조금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새 언약”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눅 22:20 참조) 
이것은 율법을 뛰어넘어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좇아가는 새로운 무리가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5장, 16장, 17장의 내용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우리에게 훗날 있을 일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름이 바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이삭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견하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8) 고 했습니다. 바로 성경 전체가 약속하고 있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마음속에 예정하고 계셨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삭에 대해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창 15:4),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21) 하는 약속이 먼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이삭에 대해서 말씀으로 여러 번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그림자, 또는 비유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삭 한 사람에게서도 여러 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 한 인물이 어떤 사람을 비유한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한 사람을 통해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나서를 보면 요나 한 사람 속에 참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모습도 보이고, 예수님의 모습도 보이고, 교회의 모습도 보이고, 율법의 모습도 보입니다. 또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 속에서는 성경에서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많은 무리들과 인물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내용이 굉장히 깊고 복잡합니다.
이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하신 말씀을 읽다 보면 이삭이 우리 거듭난 영혼들과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그가 자라나면서 나타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계에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관계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훗날 이삭이 자란 후의 모습에는 모든 것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만왕의 왕으로서 이 세상을 통치하실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창세기 22장에 기록된 어린 이삭의 모습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보겠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13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2절에 참 이상한 말씀이 있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습니까? 분명히 두 명이었습니다. 이스마엘도 아들이고 이삭도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독자”라고, ‘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라는 분이 태어나기 전에 아들 하나님이 누구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있고 그 선지자들 중에는 아브라함이나 다윗, 히스기야 같은 위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꼭 집어서 말씀하실 때 “독자”라는 그 한마디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들어 보면 예수와 동격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를 낳은 마리아나 베드로 등 섬기는 대상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창조주가 되어 함께 모든 것을 지으시고 기뻐하신 바 되었던 아들 하나님을 훗날 이 세상에 보내실 것에 대한 결심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그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렇게나 “네 독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로마서 1:2)
“선지자들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창세기를 읽다 보면 아브라함도 선지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20:7 참조)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하신 이 아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쉽게 ‘당연히 예수님이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은 가치 없이 취급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다가 잘못되었을 때 ‘하나님 맙소사.’ 하고 말합니다. 영어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 20:7) 고 했으니, 우리는 그런 말도 조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들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발견하고 그의 피를 발견하고 그 피로 인해 죄 사함 받은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보는 가장 큰 목적이고 성경을 보면서 알아 가야 할 제일 큰 과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목적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 내 귀에 즐거운 것만을 좋아합니다.|div_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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