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9.01>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63회
마태복음 15:21-28
마가복음 7:24-30
2002. 5. 4. 강연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21-28)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 내용은 우리의 생각을 조금 멈추게 합니다. 한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다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예수께 부탁했습니다. 세상에 구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러한 구걸은 상당히 드뭅니다. 이 여인에게는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었고, 부탁하는 그 상대가 자신의 요구를 이행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읽을 때마다 만약 내가 이 여인의 입장이었다면, 혹은 이 여인과 같은 족속이었다면 예수라는 인물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은 ‘나는 예수라는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다. 누가 이 사람을 소개해 주면서 친하게 지내라고 한다 해도 나는 싫다.’고 생각할 정도의 사건입니다. 이 대화에 나타난 예수의 말을 볼 때, 내가 이 가나안 여인과 같은 입장에 처해 있었다면 예수를 믿는 것은 고사하고 그의 인격을 인정했겠느냐 하는 문제에 놓이게 됩니다. 
분명 현실이었고 확실히 사실이었던 이 대화를 보면, 생각이 있고 인격이 있고 지적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예수를 인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은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의 하소연에 대한 답으로는 너무 졸렬했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예수께서는 너무 비인격적인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저는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고, 그 여인과 같은 입장에 있지 않았기에 다행이고 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랜 종교 생활 끝에, 혹은 어쩌다 성경을 알게 되어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성경이 기록된 데에는 목적과 이유가 있기에 성경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 또 믿어진 사실을 통해서 생각해 보면, 인간적인 입장을 떠나서 이 내용이 완전히 이해됩니다. 성경의 흐름을 전부 살펴볼 때, 그 당시에 예수께서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시면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고, 그렇기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어느 뒷골목의 거지였다든지 처절한 삶 가운데 있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다만 마가복음에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7:26) 고 되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용감무쌍하고 투사 정신을 가졌던 페니키아 족속이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바벨론을 비롯한 다른 여러 민족에게 많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후에는 헬라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지배를 받았고 그의 사후에도 그 나라의 군인들이 20년 넘게 이 족속을 짓밟았습니다. 페니키아인들 역시 우리 한국인 못지않게, 민족적 자존심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게 짓밟히고 나라를 빼앗겼던 원통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헬라가 지배한 나라의 사람이었기에 ‘헬라인’이라는 입장도 주어져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 시대에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경기에 나갔고, 상을 받아도 일본 것이 되었던 것처럼 그들은 우리와 같은 슬픔을 겪은 족속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적으로, 또 민족적으로 볼 때, 저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여인에 대해 퍽 동정이 갑니다. 이들은 헬라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형편없는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또 헬라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은 족속이었습니다. 당시는 헬라 사상이 지배하던 시절이었기에 지식층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거의 헬라인으로 간주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이 여인은 무언가를 찾고 있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서 그 민족을 거부한다든지,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민족의 역사를 상대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태복음 15:21-22)
이 여인은 이스라엘 역사에 큰 관심이 있는 지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그 시대에 유대인 아닌 평범한 이방인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요즘 아랍 사람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다윗을 부르라 하면 누가 부르겠습니까. 그러나 이 여인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대망인 그리스도, 즉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분을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 하는 하소연을 했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