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양을 제물로 드렸고 형에게 죽임을 당하여 그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했다고 하는 아벨도 성경에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에 아벨의 말은 한 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 속에 아벨의 피도 포함되어 있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선지자의 역사, 다시 말하면 아담이 범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역사를 더듬어 찾아가다 보면, 그것이 내 죄,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도 직결되어 있으며, 나와 내가 속한 민족에 대한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벨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를 대신해 태어난 동생 셋, 셋의 계보에서 태어난 므두셀라, 그 후 노아,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 중에 셈의 계보에서 태어난 에벨, 에벨의 두 아들 벨렉과 욕단, 둘 중에 또 벨렉의 자손, 그 벨렉의 계보에서 태어난 데라,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창세기 12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창세기 11장 27절부터 보겠습니다.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27-32절
로마서 1장 2절에는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조상,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땅을 기준으로 동쪽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은 현재 이라크 지역으로, 성경에 나타나는 지명으로는 바벨론입니다. 그곳은 전에 바벨탑이 세워졌던 곳이기도 하고 요한계시록을 보면 훗날 엄청난 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 예언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대홍수 이후에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서 지구상에 사람들이 퍼져 나갔는데, 셈의 계보에서 태어나 동쪽 어딘가에서 살고 있던 한 사람이 어느 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벨론에서부터 지금의 시리아 쪽인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동해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될 부분은 아브라함이 –당시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람이었습니다. 이것도 잘 기억해 놓아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 도달해야 할 곳, 가나안이 어떤 곳이었느냐는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어느 날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취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하체를 드러낸 채 잠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함이 보았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기 형들에게 가서 고했고,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옷을 덮었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노아는 이상하게도 하나님께 함이 아닌 그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그 함의 자손들은 현재의 이스라엘 땅에서부터 남쪽과 서쪽으로, 그리고 이집트와 그 밑으로 연결되는 아프리카 대륙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아담에게 있었던 일과 내용이 아주 흡사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함과 동시에 일어났던 작용이 바로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함도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아 버렸습니다.
성경을 읽어 가다 보면 앞에 나왔던 내용들이 계속 반복해서 나옵니다. 반복되고 예시되는 그 내용들은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1:9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실패해 버린 아담에게 있었던 작용과,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창 3:17 한 다음에 아담이 낳은 자식들이 죄인으로 태어났던 그 모습처럼,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보아 버렸던 아들을 통해서 태어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주받은 가나안을 통해서 많은 자식들이 태어났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멀리서 한 사람을 불러들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인데, 하나님께서 그 첫 조상을 불러내어 가게 하신 곳은 축복받은 땅이 아니라 저주받은 땅이었습니다.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1장, 12장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첫 번째 여정을 통해서 훗날 이스라엘 민족이 겪어 가야 할 역사와 그 민족 속에 태어나게 될 메시야가 처해 있는 운명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이 제약되어 있는 육체를 가지고는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하늘나라에서,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 30:4 하는 말씀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그 본체의 형상인 히 1:3 참조 아들 하나님에게 부탁하시는 목소리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땅은 저주받은 땅이었고, 저주받은 민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에 빠져 버렸고 죄에 빠진 인간을 통해 많은 수의 인간이 불어나 이 세상은 죄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한 곳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이나 신약성경을 읽어 보면 ‘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여기 왔나이다’ 시 40:7-8, 요 4:34 참조 하는 말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죄악의 운명 속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기 위해 세우신 계획과 그 구원의 역사가 선택받은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 중에, 특히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는 자신이 어떤 민족으로 태어나 어떠한 운명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현재 유대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인정하고 예수의 피로 거듭난 유대인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민족적으로 보았을 때 그 민족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예수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과정이나 예수의 생애,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갔고 죽었고 부활한 사실, 또 그 부활하신 분이 언젠가 이 땅에 이루실 예언에 대해서는 선지서를 읽으면서도 모릅니다. 아직은 그들에게 그것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 6:9 참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 이 짧은 말씀 속에는 죄에 빠져 있는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