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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

복음서를 읽으면서 59회
마태복음 14:13-21 
마가복음 6:30-44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5, 25-51
2002. 4. 6. 강연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태복음 14:13-21)
선지자 세례 요한의 죽음
성경을 읽다 보면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교훈하는 내용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 내용은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라고 시작하는데, 세례 요한의 시체를 가져가서 장사 지낸 사람들이 예수께 요한의 죽음을 고했고, 예수께서 그 이야기를 들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 들으면, ‘아, 그 사람이 그렇게 되어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보통 사람들처럼 살다가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후에 죽음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사십도 채우지 못했을 만큼 짧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눅 7:2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은 예수를 증거하러 온 사람들이었고, 예수는 그들이 증거한 대로 세상에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 중에도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도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약속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나심과, 그리스도가 나시기 전에 먼저 나서 그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할 사람의 삶에 대해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요 1:23) 였습니다. 앞서 와서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위인 앞에서 등불을 켜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에 대해서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 (1:8) 라고 기록했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 (요 1:9) 이 바로 그리스도인데, 보내심을 받아 그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사람이 세례 요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옛 언약인 구약성경의 기록은 끝났지만, 요한은 예수님 때에 살아 있는 선지자로서 구약 전체에 예언되어 있는 모든 선지자들의 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말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사도는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히 1:1) 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의 내용을 보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것을 위해 살았으며 그것을 외치다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경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살아 있는 선지자로서 기록된 성경을 가지고 직접 증거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셔서 말씀하실 것을 먼저 와서 알려 주었습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막 1:7) 고 했고,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요 1:15) 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이미 약속된 분이며 세례 요한 자신은 인간으로 태어나 그분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제발 우리들에게 알려 주십시오. 우리를 보낸 자들에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당신이 오실 그분이십니까?” 하고 물었고, 세례 요한은 “나는 아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요 1:19-27 참조)유대인들이 예수께 “네가 누구냐.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8:25, 57-58 참조) 그들 앞에 있는 분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었습니다. (계 4:8 참조) 그분은 이 땅에 오셨을 때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 16:20 참조) 그때는 아직 성령이 오지 않으신 때이기에 사람이 입으로만 발표하는 말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운 소리일지라도 인간의 소리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알 때에는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했을 때, 예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6-17) 고 하시며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정확하게 발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해 어렴풋이 아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마 17:12) 라는 말씀대로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성정으로 와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마 3:3, 막 1:3, 눅 3:4, 요 1:23 참조) 세례 요한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 사람을 만족시키고 원한을 풀어 주는 도구가 되어 즐거운 잔치의 희생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 보면 세례 요한의 죽음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속에 희생이 연속될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 끝을 내고 사명을 다한 뒤에, 순교자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요한의 죽음을 들은 예수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죽음을 예고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대로 세례 요한이 먼저 죽었고, 그 소식을 예수께서 들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자기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예수께서 죽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죽으러 오신 분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살기 위해 오지만, 예수는 죽으러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결국은 다 죽는 것이지만,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위대한 사실로 볼 때 세례 요한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은 대단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죽음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희생된 많은 동물들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 희생 제물의 실체였습니다. 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한 모든 선지자들의 삶과 죽음의 표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당대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증거한 선지자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해 왔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말씀해 오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7) 는 말씀처럼 그 예언의 말씀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졌고, 선지자들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이를 전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죽음으로써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사명을 완전히 뒷받침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와서 덧없이 큰소리치고 잘난 체하다가 왕에게 잘못 보여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충신도 그만큼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작가, 어떤 위인 중에서도 이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에 세례 요한만한 사람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 11:11 참조) 그런 세례 요한이 죽음을 맞이하자 요한의 제자들이 그 시체를 가져다 장사하고, 예수께 가서 알렸습니다.
성경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미련한 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 잔치하는 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전 7:4 참조) 사도들의 사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고후 4:10) 이라고 한 말이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고 한 말을 보면, 그들은 죽음을 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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