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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 엑소더스 16회

레온 유리스    4편  영광 중에 일어나라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57편)       7장     아랍측의 사페드 포위는 분할안이 표결되던 1947년 11월 29일, 그 이튿날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봄, 영국군은 사페드에서 철수하면서 예상대로 3개 중요 지점을 아랍측에 넘겨버렸다. 유대인 구를 굽어 볼 수 있는 경찰서, 아크로폴리스, 시 밖의 카난 산 위에 있는 타가트 요새였다. 사페드의 8분의 1만을 유대인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아랍 측의 차지였다. 유대인 측에는 훈련 과정을 반밖에 받지 않은 하가나 대원 2백 여 명이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1인까지 싸우겠다는 결사 항전의 태세를 갖춘 그들의 결의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정신과 같았다. 그런 만큼 좁은 골목길을 따라 빽빽히 들어서 있는 유대인 구에는 그들이 내뿜는 사기가 충만해 있었다.     영국군이 철수를 시작한 이튿날 아리는 요브 야르코니에게 30명의 팔마크 소년들과 20명의 팔마크 소녀들을 데리고 사페드에 잠입하도록 지시했다.     교주의 임시 수도로서 사페드를 확보하라는 명령이 아랍측의 비정규군에게 떨어졌다. 아랍측은 수 차례 사페드에 공격을 가했지만, 그때마다 유대인들에게 격퇴당했다. 아랍측은 유대인의 집 한 채 한 채, 방 하나 하나를 포위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사페드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저격 및 포위 전술로 되돌아갔다.     유대인측의 지휘관은 레메즈와 요브 야르코니였다. 레메즈는 아랍인 구와 유대인 구가 빈 공간 없이 붙어있기 때문에 아랍측 수색대의 침투가 쉽다는 것을 인식하고, 유대인 구와 아랍인 구 사이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르코니는 부대를 거느리고, 아랍인 구의 10여 채 가옥에 침투해서 저격 활동을 하다 후퇴했다. 아랍인들이 그 집 속으로 되돌아 와서 활동하고 나갈 때마다, 야르코니와 그 부대는 그 집으로 출동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이 그 집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집을 폭파했다. 이로서 아랍인 구와 유대인 구 사이에 빈 공간이 생겼다. 레메즈의 전략이 먹혀 든 것이다. 그 후의 전략은 수색대 활동이었다. 아랍측의 정보를 알아내어 저격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아랍측은 유대인의 야간 수색대 활동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야르코니는 적을 잘 알고 있었다. 아랍측은 미신을 믿는 무리였고, 야음을 무서워했다. 폭죽을 이용한 활동은 아랍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의 활동은 궁여지책일 뿐이었다. 유대인에게는 적에게 큰 피해를 줄 만한 병력이 없었고, 그에 비해 아랍측은 우세한 병력과 무기로 유대인에 대항하고 있었다. 팔마크 대원이나 하가나 병사 한 명이 쓰러진다 해도 뒤를 대신할 병력이 없었다. 탄환 1발을 헛되이 사용하면 벌금이 부과될 정도였다. 식량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유대인의 힘은 고갈되어가고 있었지만, 유대인 구의 한 조각도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무전기 한 대뿐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학교 수업은 계속되었고, 거리 신문은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되었다. 신도들은 교회당에서 열리는 예배에 빠지지 않았다.     아랍측의 포위망은 줄어들지 않았고, 봄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마침내 암담한 현실에 대한 의논을 하기 위해 요브 야르코니와 레메즈, 브루스 서덜랜드 준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대인 측은 이미 우수한 전투원 50명을 잃었고, 밀가루는 12포대, 탄약은 5일 동안 쓸 수 있는 분량만이 남아있었다. 이런 유대인들의 사정을 아는 아랍인들의 공격은 더욱 대담해지고 있었다.     “아리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에인 오르에 가서 아리와 의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야르코니가 말했다.       그날 밤 요브 야르코니는 사페드를 빠져나와 아리의 본부로 갔다. 사페드의 상황에 대해 세세히 보고하며 야르코니는 말했다.     “우린 사흘도 못 되어 쥐를 잡아먹어야 할 거요.”     아리는 신음 소리를 냈다. 사페드의 저항은 이슈브 전체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페드는 저항의 상징으로서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요브, 사페드를 지키면 갈릴리 전 지역에서 아랍의 사기를 꺾을 수 있네.”     “아리, 우린 지금 총 한 방을 쏘기 전에 의논부터 해야 할 지경이요.”     “따라 오게.”     아리는 사페드로 보낼 식량의 수송을 담당할 수색대를 급하게 편성하고, 요브와 함께 무기고로 갔다.       아리는 요브에게 주철, 너트, 볼트로 된 이상한 연장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게 뭐요?”     “이건 다비드카야.”     “다비드카?”     “작은 다윗이지. 유대 천재들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네.”     어떻게 보면 무기처럼 보이기도 한 이것을 요브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이게 무슨 재간을 부리는 거요?”     “박격포탄을 쏜다고 하더군.”     “어떻게요?”     “우리도 아직 실험해보지 않았네. 위력이 크다는 보고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왔지.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이 무기를 붙들고 있었네. 자네에게 줄 테니 사페드로 가지고 가게.”     식량을 수송한 야간 수색대가, 다비드카와 포탄 30발도 같이 운반했다. 사페드에 도착한 즉시 요브는 하가나와 팔마크 대원을 한자리에 모아 이 연장을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 의견을 나누었다. 누군가서덜랜드 준장에게 도움을 구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도착한 서덜랜드는 그 연장들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유대인뿐이지.”     서덜랜드가 그 연장에 달린 지렛대와 손잡이, 스위치와 조준 장치들을 만지작거린 끝에 발사 방법을 한 가지 고안해냈다. 그러나 그것이 정작 발사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다비드카는 어느 빈터로 끌려 와 아랍측이 점거하고 있는 곳을 향해 아무렇게나 놓여졌다. 아무도 이 괴물이 발사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탄두가 포구 바로 앞에서 떨어지면 유대인 구는 순식간에 없어지네.”서덜랜드가 말했다.     “얼른 치러버립시다.” 레메즈가 비관적인 말투로 말했다.     전원이 차폐물 뒤에 숨었다. 땅 위는 쥐죽은 듯한 고요가 흘렀다.     “쏘아 봐.” 야르코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레메즈가 밧줄을 낚아채자 다비드카에서 포탄이 발사되었다. 포탄은 경찰서 부근의 어느 아랍 가옥으로 가서 떨어졌다. 모두들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포탄은 우레같은 소리를 내면서 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고개의 반이 날아간 듯했다. 잠깐 침묵의 순간이 흐른 뒤에 놀라움과 환성과 환희가 뒤범벅된 시간이 이어졌다.     “자 빨리 한방 더 쏩시다!”       요브는 아리에게 다비드카가 아랍인들에게 대혼란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전했다. 아리는 기회가 왔음을 직감하고, 각 부락의 몇 사람을 동원해 하가나 2개 중대를 편성했다. 그 일행과 함께 밤을 이용해 다비드카의 포탄을 갖고 사페드로 들어갔다.     작은 다비드카 한 대가 거리를 황무지로 만들고 있었다. 사페드에서 다비드카를 사용한지 사흘 만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리는 허세를 무기로 삼아 아랍인 스파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아랍어로 연설을 시작했다.     “형제들, 우리에게는 한 가지 비밀 무기가 있소. 나로서는 그 무기의 성질을 밝힐 입장은 못 되지만, 핵무기 폭발이 있은 후에는 언제나 비가 온다는 말만은 해두겠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소?”     이 말은 곧 유대인에게 원자탄이 있다는 소문으로 증폭되었다.     작은 다비드카는 계속 포탄을 쏘아대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랍인 주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리는 여세를 몰아 3백 명의 하가나를 조직해 아랍인이 점령하고 있는 아크로폴리스로 출격했다. 그러나 충동적인 이 출격은 유대인 측의 큰 피해로 되돌아왔다.     사흘 후, 사페드의 아랍인들이 거의 없어지고, 수백 명의 비정규군이 탈주하고 난 뒤에 아리 벤 카난, 레메즈, 요브는 조직적인 삼면 공격을 통해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전세는 역전되었다. 유대인들은 아랍 경찰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을 점령하게 되었던 것이다.     경찰서까지 함락되자 아리는 카난 산의 거대한 타가트 요새를 외부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시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 도착한 그는 아랍인들이 요새를 버리고 도망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요새를 함락시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요새마저 손에 넣었고, 사페드 정복은 끝난 셈이었다.     사페드에서의 승리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방위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던 만큼 그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곳이었다. 유대인들은 불과 수백 명의 전투원과 작은 다비드카 한 대로 시 전체를 점령한 것이다.       갈릴리 지방 어느 한 곳에 남아프리카 인과 미국의 지원자들이 조종하는 비행기 한 대가 착륙했다. 군중들이 몰려와 비행기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소총, 기관총, 박격포, 수십만 발의 탄약이었다. 무기가 4, 5차례 도착한 즈음에 유대인들은 승리에 이은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갈릴리 바닷가의 티베리아스도 유대인 손에 들어왔고, 거대한 타가트 요새도 점령되었다. 여세를 몰아 유대인들은 하이파로 출격했다. 아직 영국군들이 지배하고 있던 항만 지구는 유대인의 공세를 막기 위해 수차례 휴전을 요구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아랍군 사령관과 참모부가 비밀리에 탈출한 사건이 발생하자 아랍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유대인들이 아랍구로 진격하려 하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아랍측은 하이파 전 주민이 철수를 희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레바논 국경 밖으로 도주하는 아랍인의 물결은 정말 기이한 광경이었다.       1948년의 5월이 왔다. 두 주 후면 영국군이 완전히 철수한다. 길고 길었던 팔레스타인의 신탁통치가 끝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국경지역에는 시리아, 예멘, 레바논, 트랜스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의 정규군들이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 수비를 하고 있었다. 이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결단을 내릴 시각이 일초, 일초 다가왔다. 독립을 선언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동안 이슈브는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과 맨손으로 싸우다시피 해서 찬란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의 이슈브는 이미 예전의 이슈브가 아니었다. 이젠 힘과 조직력을 갖춰 탄탄해졌다. 그들은 처음부터 행정, 정보, 지휘 계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들은 경험을 쌓아올렸고, 또 거듭되는 승리로 자신감도 늘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수비만이 아닌, 아랍군에 선제공격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때도 승리를 얻어냈다. 아랍측은 조직 지휘부가 약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전을 감내해낼 만한 마음의 준비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이슈브는 무엇이든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8장     1948년 5월 13일 새벽, 팔레스타인의 영국 고등판무관은 전란이 휩쓸고 간 자국이 크게 나 있는 팔레스타인을 비밀리에 떠났다. 권력 남용의 상징이었던 대영제국의 국기는 내려졌다.       1948년 5월 14일     이슈브와 세계 시온주의 연합회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시의 창설자이며 초대 시장인 디젠고프의 텔아비브 집에서 모였다. 집 밖에서는 기관총을 든 경호병들이 초조한 군중을 가로막았다.     각국의 언론매체들은 이 모임을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세계의 이목이 이 집에 집중되고 있었다.     “여기는 ‘이스라엘의 소리’ 방송국입니다.”     아나운서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했다.     “방금 접수한 영국의 신탁통치 종결에 관한 문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조용히들 해, 조용히!”     리베르만 박사는 자기의 숙사 안에 모인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타일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침착한 음성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유대 민족의 발상지이다. 유대 민족의 정신적, 종교적, 민족적 위치는 이 땅에서 형성되었다. 유대 민족은 이 땅에서 독립을 이루고, 이 땅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창조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성서의 글을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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