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에게 보이지 말고 엄마 갖다 드리라고 돈 얼마를 쥐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아빠는 무슨 일을 하시느냐 물었더니 집에서 마루청을 고치고 대패질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패 생각이 나서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제의 성격은 설교나 전도만 하고 매미같이 찬송만 부르다 마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과 모든 것이 함께 있어 왔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강당도, 모임 장소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어린 학생들이 빗자루를 들고 일을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야, 우리 모임 초기에는 너희 같은 아이들이 별로 없었어.’ 하는 말이 입가에 맴돕니다. 청년들, 휴가 나온 군인들이 일을 거드는 것을 보면, ‘야, 우리가 너희 나이 때에 모임에는 성경책과 찬송가밖에 없었어. 자동차도 한 대 없었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전도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들을 맞고 있습니다. 전도할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집에서나 어디서나 친구를 만나면, 또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만나면 잔뜩 올라온 마음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지만 예의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성경, 내가 믿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이 항상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한마디 충고가 있다면 “성령을 소멸치 말며” (살전 5:19),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 4:30) 하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사정과 하나님의 사정은 다릅니다.
전국의 구원받은 사람을 다 합쳐도 300명이 겨우 되던 당시, 함께 전도하던 권 목사님은 방송국에 취직이 되었다며 대구를 떠나 멀리 인천으로 가셨습니다. 같이 전도하던 사람이 가고 난 자리에 저 혼자 남았습니다. 쓸쓸하거나 외롭다고 느낄 만도 했는데, 그때는 그럴 새가 없었습니다. 매일 몸이 곤죽이 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들으러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집사람은 오는 사람을 다 맞이하고 음식을 해 대느라 바빴습니다.
그 당시에는 ‘권 목사님은 인천으로 떠나셨지만, 그래도 믿는 형제들의 생각이 하나라면 거리가 먼들 무슨 관계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직장을 얻어서 떠났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가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러 가신 것이었습니다. 설교 방송을 하러 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저는 일기장에 점 하나를 찍어 놓고, ‘이것이 나라면, 옆에 한 사람이 있으면 둘이 교제를 가지게 될 것이고, 복음을 깨달은 두 사람의 공통된 이야기는 옆의 또 다른 사람에게 생소한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 사람에게 의문이 일어나 관심을 갖도록 하다 보면 어느 날 그 사람도 해결되어 세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세 사람 중에 누군가가 아는 사람을 데려오고 그렇게 또 한 사람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네 사람이 된다. 때로는 몇 사람씩 끼어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작정을 하기도 전에 주님은 이미 우리를 쓰고 계실 것이다.’ 하는 생각을 기호로 적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임이 이렇게 커 갈 것이라는 것을 암호처럼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 보수적이었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힘들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다니던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던 사람이나 종교를 가진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앞서려는 힘이 있었고, 또 설교하는 사람을 자기 손아귀에 쥐기 위해 금전적인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것을 거부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와 상관없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낱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던 죄인 시절,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매달리기만 하던 그 시절의 마음이 어느 날 이후부터 달라졌고, 그 달라진 마음속에는 ‘내가 전도해야 되겠다. 전도하러 가자.’ 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생각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1962년, 제가 스물두 살 때의 일입니다. 저는 복음을 깨달아 놓고도 그것이 복음을 깨달은 것인 줄 몰랐습니다. 예수를 믿었는데 한층 더 잘 믿게 되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제게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가 무엇이냐 물으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찬송가 512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하고 대답합니다. 어릴 때는 맹목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찬송가 411장) 하고 찬송가를 불렀는데, 언젠가 확실히 믿어진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것이라고 누가 가르쳐 준 적은 없습니다. 그때만 해도 구원 여부는 나중에 저 위에 갔을 때, 심판 후에나 결정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으면서도, 장로교회에 다닐 때 가졌던 구원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확실히 믿은 그날 이후로는 자꾸만 성경 이야기를 하고 싶고 계속 성경을 보고 싶었습니다. 전에는 그렇게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주일 학교 반사도 자청해서 열성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들에게 철저히 가르쳐 주려고 했습니다. 주일 학교 시간이 끝나면 일부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산 중턱에 모아 놓고 들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가을이면 “넓은 들에 익은 곡식” (찬송가 308장), 봄이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가 78장) 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반사 생활을 했습니다.
주일이면 새벽 기도를 마치고 주일 학교 반사 활동을 하고, 10시쯤 되면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반사 회의를 한 후 청소를 하면서 의자를 정돈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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