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의 시작은 바츨라프 광장에서였다. 이곳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이 선언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공산정권에 항거해 ‘프라하의 봄’ 혁명, ‘벨벳 혁명’ 등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체코인들의 굵직한 근현대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했다. 체코라고 불리기 전, 이 지역은 오랫동안 모라비아와 보헤미아로 불렸고 그 이름대로 9세기에 모라비아 왕국, 10세기에는 보헤미아 왕국이 세워졌었다.
현재 프라하의 기본 틀을 만든 사람은 14세기의 카를 4세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왕이 된 그는 보헤미아 왕국의 왕을 겸임하면서 제국의 수도를 자신의 고향인 프라하로 정했고, 프라하를 유럽 권력의 심장부와 창조적인 문화의 도시로 만드는 데 힘썼다.
카를 4세가 남겨 준 역사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2차 세계 대전 때 체코슬로바키아는 항전을 포기했다. 비록 나라는 독일에 점령되었지만 그로 인해 프라하는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중세의 모습을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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