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는 말씀도 아주 쉬운 말 같습니다. 이 말씀에는 그저 주셨다고 표현되어 있을 뿐이지만 어떻게 주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 들어가 살펴보면,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갖다주었다, 선물을 주었다는 말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그냥 쉽게 줄 것을 준다, 가치 없는 것을 준다, 주던 습관대로 준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주셨다’는 말 속에는 예수의 죽음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는 데에는 ‘그 아들을 죽게 하기까지’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먼 옛날,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시험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셨는데, 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렵게 태어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듣고 모리아산에 가서 아들을 제물로 삼아 불에 태워 죽일 준비를 했습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을 바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멀리 바라보았고,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시고 다른 제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창 22장 참조)
아브라함은 늙어서 겨우 얻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제게 그런 시련이 온다면, 저는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내가 낳은 자식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습니까? 만약 행위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라면,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독자를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결정을 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는 이 ‘주심’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 믿으라!’ 하고 그냥 불쑥 내밀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들을 그냥 내어 보내신 것이 아니라 참으로 주시기 위해서, 길고 긴 역사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계획을 이루어 나가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옮겨 주시는 그 과정은 참으로 힘든 것이었습니다. 받는 사람은 그냥 받으면 되지만, 창조자로서 인간에게 독생자를 맡기실 때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역사적인 면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있은 후 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는 물론 들어가서도 많은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었고, 부인 사라를 바로왕에게 뺏길 뻔하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마 1:1-2) 하는 과정 속에서 이삭이 나기까지 아브라함은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삭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삭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에서는 제해지고 둘째 야곱이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앞세우셨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정한 것이 또 있었습니다.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에서는 장자로 태어났지만, 어떤 대를 이었다고 성경에 기록될 만큼 야곱과 같이 빛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주에 가까운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야곱도 많은 곡절을 겪으며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야곱은 대를 잇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태어나는 과정도 아주 묘했는데, 그 어려운 과정을 지나 열두 아들이 났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 1:2) 하면서 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 되었습니다.
훗날 야곱은 자기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세월을 마쳤습니다. 430년이 지나 그 후손들은 아브라함에게 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사 대 만에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왔고, 그 역사 가운데 그리스도가 나시기까지 그 혈통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보통 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의 시작만 보더라도 그리스도가 탄생될 가정이 꾸려지는 과정은 보통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을 자세히 살피고 깊이 상고해 보면,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 속에서 얼마나 심사숙고하여 긴 세월 동안 설명해 오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 1:1-2) 하며 낳고 낳는 이 역사를 쉽게 읽고 말합니다만, 그 역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유다에게 대가 이어질 것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유다의 아들들은 일찍 죽어 그 집의 대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다의 며느리가 아주 지혜롭게 행해 대를 이었습니다.
율법도 십계명도 없던 그 시절에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면박으로 얼굴을 가려서 시아버지를 속이고 창녀 노릇을 했고, 시아버지로부터 약조물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며느리가 잉태한 것을 안 유다가 며느리를 죽이려고 할 때, 다말은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하면서 유다가 준 약조물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했습니다. (창 38장 참조) 이 일로 인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마 1:3) 하는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마 1:3-6) 하는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통해서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낳고 낳는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모체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인류를 타락시킨 사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가정을 부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탄생시킬 때까지 한 민족 속에서 한 가정을 계속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인간에게 보내실 때까지 하나님의 계획은 철두철미하게 진행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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