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덧붙이셨습니다. 특별한 인물, 특별한 가족과 상관없이 “누구든지”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나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연락을 해 준 사람의 말을 묵살해 버렸습니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에게 이렇게 냉정하고 단호한 입장을 보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예수는 도덕도 모르는 분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막된 법도 자기 모친이나 동생들을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사상과 이념 때문에 부모 형제를 모른다고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이 많이 살다가 갔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고 분명히 자신의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을 보시고 이야기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1) 하는 내용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 6:9 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단독으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미움 받을 발언입니다. 예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는데,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요 5:18 참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라고 하신 말씀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예수를 낳아 준 어머니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종교인들은 예수를 낳아 준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하나님의 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섬기기도 합니다만, 그 여인도 예수를 잉태했을 때 자신에 대해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눅 1:48) 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다가 예수를 낳은 사람일 뿐, 하늘에 올라갔다거나 한 기록은 없습니다. 수 세기가 지난 후에 사람들은 마리아가 하늘로 승천하는 그림을 그렸고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 승천비까지 만들었습니다만, 그런 것은 성경과 거리가 먼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또 예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하셨는데, 모친이 자기를 낳고 그 남편에게서 자기 동생들을 낳았기에, 즉 어머니는 같은데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자기만 아버지가 없고 동생들은 아버지인 요셉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고 가볍게 일축한 것이겠습니까? 어떻든 낳아 준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동생들이 실은 이모의 아들들이고 이 구절에 나온 예수의 모친이라는 사람은 그 이모라는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자세히 살핀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분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 친아버지라 했으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하는 말씀대로 예수님이 참람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과장된 이야기를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그들이 자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아니라고 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낳은 자녀들과는 그 위치가 완전히 구별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탄생시키기는 했지만 예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본체셨고 역사를 통해 한 민족에게 말씀해 오던 분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많은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서 예수께 “네가 누구냐”고 따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요 8:25) 고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시자 유대인들은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하고 물었고,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8:56-58 참조)
아브라함은 예수께서 오셔서 할 일을 오래전에 멀리서 내다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먼 여행이 시작되었고 그 여행 끝에 복된 땅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말하여 오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4-15) 는 약속도 해 주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늙고 부인도 늙어 자식을 얻을 희망이 없을 때에 “네 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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