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혼돈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세상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그 십자가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고, 십자가가 어떻게 해서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알았을 때 그로 인해서 구원이 된다는 것은 세상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에 당시의 사상으로는,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성경은 인간의 지혜로 십자가의 도를 알려고 하고 십자가로 인해서 인간이 구원된다는 내용을 밝히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그렇게 쌓인 지식을 점점 더 많이 배움으로써 인간의 지혜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떤 사람이 새를 관찰하면서, 새가 알에서 부화되어 자라고 날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멋있게 책으로 썼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지만 그 새 자체가 없다면 그 내용은 이론으로만 그칠 뿐입니다. 교육이 교육에 의해서 발달해 갈지는 몰라도, 이론이 점점 강해질지는 몰라도, 실체가 없으면 그 모든 것은 이론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무엇입니까? 생명이 생명을 낳아 이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연장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식의 연장은 다릅니다. 인간이 세상에 많이 태어나면 태어나는 만큼 지식도 상당히 많이 발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배워서 알아 가는 것뿐입니다. 지식은 지식으로 전달되는 반면에 참새가 알을 낳을 때 배워서 낳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명은 생명에 의해서 전달됩니다.저는 언젠가 어떤 어리석은 새에 대한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새는 자기가 낳은 것보다 훨씬 더 큰 알이 자기 둥우리에 있어도 그것이 자기가 낳은 것인 줄 알고 자기 알과 같이 그 알을 품습니다. 작은 어미 새는 배운 것도 아닌데 자기 종족 유지를 위해서 본능적으로 자기 둥지에 있는 알을 길러 주고 먹여 주었습니다. 그 큰 알에서 나온 새끼는 몸집이 크지만 자기가 낳은 새끼들은 어미처럼 작습니다. 어미 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큰 알에서 나온 새끼는 어미 새의 새끼들을 둥우리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혼자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바로 뻐꾸기 새끼입니다. 키워준 어미 새는 참새만한 크기인데, 큰 알에서 나온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보다 커집니다. 얼마 지났을 때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은 새 한 마리가 ‘뻐꾹’ 하면 그 소리를 듣고는 따라가 버립니다. 잘 키워 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뻐꾸기는 그렇게 생명 연장을 합니다. 이런 것을 포착하여 찍고 화면에 내보내는 것은 인간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있더라.’ 하고 전달하는 정도밖에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활동 사진기를 발명하고 필름을 발명하여 그 새들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찍혀 나오는 일이 가능해졌는데, 요즘에 와서는 한 사람의 생애가 조그마한 저장 매체 안에 다 들어가 버립니다. 그것도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의 폭이 넓어진 결과이지만 그 안에 생명은 없습니다. 사람이 지혜를 가지고 발전시킨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찍어 설명해 주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5월이면 산속에서 어김없이 뻐꾸기 소리가 울립니다. 이쪽 산에서 ‘뻑!’ 하면 저쪽에서 ‘꾹!’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기록하여 작품을 만들고 글을 쓰고 필름에 담기도 하지만, 그런 활동은 그 새들의 생명 연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근본 생명에 대해 설명하시기 위해서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린도전서 1:18-20)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는 기준에서 볼 때 세상의 지혜는 아무리 모습이 닮았더라도 생명의 연장은 아닙니다. 죽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식해 보이고 말 없는 생물들이 하고 있는 일은 생명의 연장입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자연의 힘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힘에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