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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 유한한 생명, 하나님을 의뢰하는 삶, 부자와 나사로 1

-제36회 성경탐구모임 2004년 7월 29일 저녁 
 
하나님께 속한 우주의 질서
 
 
요즘은 지옥 이야기가 제일 인기 없는 시절입니다. 지금부터 한 40년 전 50년 전, 영상 매체가 그리 많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람들이 바쁜 중에도 한 번씩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보곤 했습니다. 아이들도 놀다가 별과 달 노래를 부르고, 젊은이들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는 직접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육안이 아닌 기계를 통해서 하늘을 봅니다. 구름이 어디서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 예측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온도나 바람, 이 모든 것이 종합되어 발표됩니다. 어떤 고기압 형태가 어떻게 나타난다, 또 어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더운 바람과 부딪쳤을 때 어떤 형태가 된다, 이것들은 오늘날 기상과학자들이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찾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서 구름이 낀 것을 보고 비가 올 것을 예측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감지하는 것인데, 기상 연구소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서 날씨를 관측합니다. 심지어는 인공위성을 통해 비의 방향을 미리 예측하고 며칠 전부터 예보를 합니다.
 
 
이런 시대에 천국을 논하고, 하늘나라를 논하고, 지옥을 논하는 설교는 이제 그다지 인기가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둘둘 섞어서 재미있게만 발표하면 인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누누이 들어 온 이야기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로만 일관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예수를 가지고 농담거리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놀랐거나, 기분이 나쁘면 ‘Jesus’, ‘Oh my God’ 하면서 함부로 이야기합니다. 거기에 대한 심판을 어떻게 받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 20:7)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하나님도 우주 밖으로 쫓아내고, 지옥도 화산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이 우주 질서가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라는 성경 말씀입니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 119:91) 태양을 향해서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하는 과정, 태양계의 별들이 움직이는 과정, 태양계 밖에 저 먼 데 있는 발광체, 발광체 아닌 별들, 이런 많은 별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우주의 모든 질서는 저절로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자신은 우리네 인생 자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고 자고, 살아있는 이 존재의 가치는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자부합니다. 물론 육체의 조건들은 동물보다 약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활동 능력은 동물보다 우월합니다.
 
 
사람의 생명
 
 
그런데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천체가 아무 뜻 없이 그냥 돌고 있지 않듯이, 사람의 모든 움직임도 아무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 외에는 자기의 뇌 작용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뛰고, 잘 달리던 달음박질 선수도 운동 신경이나 기억 세포, 또는 운동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절하는 세포가 파괴되면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됩니다. 귓속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는 방향을 잘 조절하지 못합니다. 이 땅위에서 땅을 딛고 사는 우리 몸은 확실하게 뇌의 조종을 받고 있고, 기억세포의 조종을 받고 있습니다. 기억세포 없이는 어떤 운동신경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한 예를 들어, ‘일어서라’는 말을 배운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면 일어섭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뜻 없이 일어서고, 뜻 없이 앉는 아기들처럼 움직입니다. 그것은 운동 신경에 의해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이 다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곰팡이든, 세균이든, 바이러스든 이 모든 것이 다 ‘저절로’ 생겼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절로’는 법칙이 아닙니다. 세상에 사람이 존재하고, 생명이 존재하는, 이 모든 것들이 속해 있는 우주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라고 말합니다. 보이는 물질의 세계는 잠깐입니다.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보이는 물질의 세계도 산화되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것도 분해된 물질이지, 물질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는 보이는 물질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끝없는 세월이 있습니다. 시간은 마냥 흘러갑니다. 이것은 벽이 없고, 끝이 없는 우주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우주 안에서 시작된 세월은 흘러가고, 우리는 세월 속에 떠 있는 이 천체들 중에 지구에서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하늘에 떠 있는 이 지구는 우리의 고향이며, 우리의 세포를 형성시킨 땅입니다. 땅에서는 채소가 나고, 곡식이 납니다.
 
 
그런데 인류가 지금까지 소비한 음식물의 양은 엄청납니다. 지금까지 땅에서 났던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다 합하면 지구가 싣고 있기는 힘들 것입니다. 어떤 그릇 속에서 거품이 부풀어서 비눗방울이 방 하나를 채울 만큼 많아졌다고 해도 줄면 원래 부피로 돌아가듯이, 우리는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살면서 우리의 부피를 유지하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 하신 대로 인생은 사라질 뿐입니다.
 
 
그러한 인생의 몸속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몸 전체에 힘자라는 데까지, 피가 가는 곳까지 세포는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또 만들어집니다. 그 중에 머리카락은 자라서 끊겨나가고 손톱 발톱도 자라서 끊겨나가고, 이빨도 갈려 나가고, 세포의 각질들도 벗겨져 나갑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기관들 속의 혈관 벽, 입 안, 목 안, 식도 안, 위 안, 십이지장 안, 소장 안, 대장 안, 마지막 직장 안까지 모든 통로를 통해서 세포는 서서히 바뀌어져서 씻겨 나갑니다. 우리가 땀을 씻을 때 씻겨 나가는 때뿐만 아니라 우리 각질도 그 속에 섞여서 벗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 속에는 눈물도 있고, 땀도 있고, 침도 있고, 소변도 있고, 대변도 있습니다. 우리 몸은 살아있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한 배설기관과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제자리에 서서 자라고 있듯이, 사람도 제 모습을 가지고 제 모습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움직이는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사람은 물을 마시고 양식을 먹는 동안 살아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과 혼과 몸.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뼈와 살과 피로 나누어 봅시다. 살은 단백질로 구성된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몸속의 세포를 붙잡고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우주에는 많은 천체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이 서로 맞부딪히지 않고 운행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붙잡고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 119:91) 하신 대로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모든 것을 다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큰소리치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에게서 생명이 떠나는 순간에 우리의 세포는 서서히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사그라져서 먼지가 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를 붙잡고 있는 생명이 떠나면 흙에 그대로 흡수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쓴 소설 속에 바보 이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그 사람보다 더 바보스러운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 이 사람에게 콩을 볶아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날 콩은 맛이 비린데 볶아 먹으니 얼마나 고소한지. 그래서 이 바보 같은 사람이 작정을 했습니다.
 
 
‘내년에는 콩을 다 볶아서 심어야겠다.’
 
 
볶은 콩을 심어놓고 계속 거름을 준다 한들 싹이 나겠습니까? 콩의 생명이 나간 것입니다. 콩 알갱이의 세포를 붙잡을 수 있는 생명이 사라진 것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분해되어 사그라집니다.
 
 
인생의 길을 지도하는 힘
 
 
그런데 분해될 수 있는 이 육체를 붙잡고 있는 힘, 지금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이 힘의 원천은 뇌 세포를 붙잡고 있는 어떤 힘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인생의 길은 자기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나그네길”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 생명이 있는 확실한 길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세상 만민이 의의 길...길과 진리요 참 생명  (찬송가 265장)
 
 
우리는 수학을 배우면 수학 공식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힘이 생깁니다. 모든 학문은 그와 같이 발달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릅니다. 아니, 조금 다른 것이 아니고 각도가 전혀 다릅니다. 세상 지식과 모든 학문, 이 세상 것들은 교육에 의해서 전수되고 발달되어 갈 뿐입니다.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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