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인생의 몸속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몸 전체에 힘자라는 데까지, 피가 가는 곳까지 세포는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또 만들어집니다. 그 중에 머리카락은 자라서 끊겨나가고 손톱 발톱도 자라서 끊겨나가고, 이빨도 갈려 나가고, 세포의 각질들도 벗겨져 나갑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기관들 속의 혈관 벽, 입 안, 목 안, 식도 안, 위 안, 십이지장 안, 소장 안, 대장 안, 마지막 직장 안까지 모든 통로를 통해서 세포는 서서히 바뀌어져서 씻겨 나갑니다. 우리가 땀을 씻을 때 씻겨 나가는 때뿐만 아니라 우리 각질도 그 속에 섞여서 벗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 속에는 눈물도 있고, 땀도 있고, 침도 있고, 소변도 있고, 대변도 있습니다. 우리 몸은 살아있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한 배설기관과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제자리에 서서 자라고 있듯이, 사람도 제 모습을 가지고 제 모습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움직이는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사람은 물을 마시고 양식을 먹는 동안 살아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과 혼과 몸.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뼈와 살과 피로 나누어 봅시다. 살은 단백질로 구성된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몸속의 세포를 붙잡고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우주에는 많은 천체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이 서로 맞부딪히지 않고 운행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붙잡고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 119:91) 하신 대로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모든 것을 다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큰소리치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에게서 생명이 떠나는 순간에 우리의 세포는 서서히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사그라져서 먼지가 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를 붙잡고 있는 생명이 떠나면 흙에 그대로 흡수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쓴 소설 속에 바보 이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그 사람보다 더 바보스러운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 이 사람에게 콩을 볶아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날 콩은 맛이 비린데 볶아 먹으니 얼마나 고소한지. 그래서 이 바보 같은 사람이 작정을 했습니다.
‘내년에는 콩을 다 볶아서 심어야겠다.’
볶은 콩을 심어놓고 계속 거름을 준다 한들 싹이 나겠습니까? 콩의 생명이 나간 것입니다. 콩 알갱이의 세포를 붙잡을 수 있는 생명이 사라진 것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분해되어 사그라집니다.
인생의 길을 지도하는 힘
그런데 분해될 수 있는 이 육체를 붙잡고 있는 힘, 지금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이 힘의 원천은 뇌 세포를 붙잡고 있는 어떤 힘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인생의 길은 자기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나그네길”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 생명이 있는 확실한 길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세상 만민이 의의 길...길과 진리요 참 생명 (찬송가 265장)
우리는 수학을 배우면 수학 공식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힘이 생깁니다. 모든 학문은 그와 같이 발달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릅니다. 아니, 조금 다른 것이 아니고 각도가 전혀 다릅니다. 세상 지식과 모든 학문, 이 세상 것들은 교육에 의해서 전수되고 발달되어 갈 뿐입니다.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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