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예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고 하셨는데, 세상일에는 높고 낮은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기독교인들을 살펴보면, 그 주인보다 더 위대한 자리를 차지하고 세상적인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자리를 비우시고 자기 영광을 다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라고 부르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고 말하면서도, 세상적인 위치로는 가장 높은 곳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그러한 높은 위치에 앉아 예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과 같은 일을 자기 생애 가운데 절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한두 번 그러한 행동을 할 뿐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훗날 사도들이 그들 옆에 없을 때에 많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도들은 그들에게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고전 4:8) 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외형상의 위치는 상당히 높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하는 말씀에 말로는 ‘과연 그러합니다.’ 하면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좋은 위치에 들어간 사람도 많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어떤 직위를 빙자한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참으로 깨달았던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과 핍박, 괴로움을 마땅히 받아야 될 자로 자처하면서 고통과 외로움과 답답함을 몸소 겪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살 소망이 끊어졌다는 말까지 했고 (고후 1:8 참조), 또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고전 4:9) 라고도 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예수 믿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2)고도 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사도들, 예수님의 제자들은 참으로 선생보다 더 낫지 못한 위치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29) 하신 말씀 그대로를 몸소 겪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선생이, 상전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제자가, 종이 대접받기를 바라거나 세상에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고난을 피하면 이 말씀에 위배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입니다.전에 저는 어느 그리스도인의 일기장을 읽다가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식민지 시절에 전도하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라는 사람이 쓴 ‘그리스도께서, 내 주 예수께서 오셔서 고난 받으신 이 세상에서 내가 무슨 낙을 바라겠느냐.’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았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은 어떤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들이 훗날 겪을 일을 미리 아시고 하신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오셔서 대접받지 못하고 고난을 당하신 예수와 같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며 살았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고 하신 이 말씀에 과연 내 생애도 그러한지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우리는 찬송가 가사 중에서도 주가 고난 받으셨으니 나 또한 고난 받는다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리라(합동찬송가 243장 주의 음성 들은 이 몸)
우리가 부르는 찬송을 이론이나 노래로만 끝낼 것이 아닙니다. 생활에 묻어 들어오는 고난과 역경이 예수 때문에 당하는 것이라면, ‘아, 나도 예수와 같아지는 것을 배우는구나.’ 하고 고맙게 여기면 됩니다. 핍박을 면하려고 굳이 다른 방법을 취하거나 잔꾀를 부리는 것은 주인에게 가까워지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자가 선생과 같아지려는 것을 싫어하고 종이 상전과 같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자세입니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태복음 10:25)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 귀신을 얼마나 더럽게 보았던지 파리로 취급했습니다. 파리 떼의 왕파리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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