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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토론

매주 성경 강연 이후에 강연자와 청중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포럼은 강연 내용을 샅샅이 검토한 몇 명의 연구자들이 질문을 하면, 강연자가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 포럼을 통해 의문점을 풀고, 강연 내용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소리포럼은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Q  아브라함과 부자의 대화중에서 모세와 선지자가 거론되는데, 부자는 모세와 선지자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었나요?       A  물론입니다.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라고 부른 것을 보면, 부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모세오경과 선지서들, 즉 구약 성경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예레미야나 이사야같은 선지자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당대 유대 민족 앞에 나타나서 가르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5) 는 경고를 하셨고,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부자는 예수님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처럼 전통과 율법과 모든 규례들을 가지고 있었고 입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고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 낮아지지 않고 목이 곧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눅 3:8)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죽은 후에야 자기 형제들을 생각하고는 아브라함에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 가서 말하면 그 말을 듣고 회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다운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지 않습니까?     유대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사람들로서 이방인을 ‘주인의 상 아래 개들’로 취급한 역사가 있습니다. 아랍 사람이든, 다른 어느 나라 사람이든 유대인이 아니면 모두가 이방인으로 똑같은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던 사람들도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처럼 취급을 받고 개가 헌데를 핥을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일들을 가리켜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 2:28-29) 라는 말을 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부자와 같은 유대인 외에 나사로 같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유대인들은 같은 아브라함 자손이었지만, 부자가 아니라 나사로의 반열에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사 9:1-2) 하신 말씀처럼, 멸시 받던 갈릴리 땅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빛이 비취고,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낮은 위치에 처한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 앞서, 유대인들의 마음의 밭을 갈고 그들을 회개시키고 낮추기 위해서 세상에 왔던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가 천하 없이 외로웠던 것과 같이 부자의 대문 앞에 앉았던 나사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 민족은 앉은뱅이와도 같았습니다. 아무 민족이나 앉은뱅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앉은뱅이는 머릿속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어서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를 믿고 율법과 유대 전통과 규례를 다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참으로 낮은 자, 외로운 자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정말 버려진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낮아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라’는 그의 이름대로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 앉은뱅이도 나중에 철저히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Q  그렇다면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앉은뱅이가 일어섰다’는 찬송으로 불릴 수는 없겠네요.   &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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