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모든 것이 즐겁기만 했습니다. 교회 활동도 재미있었기에 교회도 매주 잘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점점 교회보다는 세상에 속한 일에 푹 빠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또 제 잘못으로 인해 아버지와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가슴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실망감과 슬픔만을 안겨드렸습니다. 저는 말로써는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겉으로는 표현이 잘 되지 않았고 잘못된 모습만을 보여드렸습니다. 속마음과는 달랐기 때문에 저도 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저보다는 부모님이 더 힘드시고, 더욱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왜 저와 같은 자식 때문에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셔야 하는지.... 전 부모님의 눈물을 본 순간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잠도 잘 수 없었고, 소리 죽여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울었다 하여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아버지 회사의 일 때문에 전주라는 낯선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동 시합이 있어서 얼마 동안 대구에 혼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간섭받지 않아 좋다고 생각하며 자유의 몸이 된 듯이 온통 세상의 멋에 깃들어 놀기만 하고 운동을 했습니다. 저 혼자 그렇게 지내는 동안 부모님은 얼마나 안쓰러우셨을지 이제는 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후 시합을 잘 마무리 짓고서야 전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대구에 있을 때는 교회를 자주 나가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속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제 자신은 그래도 착하고 교회생활도 착실하게 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전주에 와서는 은연중에 겪게 되는 텃세 같은 것도 있고 그래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정말 방탕한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전주에 와서도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처음 보는 동기와 선후배들과 운동을 했는데 같이 운동을 해도 전 항상 외톨이였습니다. 전 그들의 타깃이라도 된 것 같았고, 그런 일이 계속 되자 결국 좋지 않은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저희 형 또한 테니스 선수였는데, 두 살 위의 형은 그런 제게 아무런 힘도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전 그런 형이 너무 야속했고, 겁쟁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무척 미워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형이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많은 격려와 위로를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왜 미처 몰랐는지, 형에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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