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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 예수님의 몸과 피

2010년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
이 강연은 제35회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 중 2010년 10월 14일 저녁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자신의 몸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구약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또 먹는 문제가 우리 인류의 영혼의 문제와 처음부터 직결되어 있었다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과 동시에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던 영혼의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전화기로 비유하면 통신이 두절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로 펼쳐진 인류 역사 속에서, 세상에 당신의 영광을 보이시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이끌어내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겪은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또 무엇을 질책하시는지를 성경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음식이 없어서 원망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저 멀리 구름 속에 있는 영광을 보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만나를 모았습니다. 출 16장 참조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이 만나를 사십 년간 먹게 됩니다. 만나가 광야에 내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위해서 아침마다 그것을 모으고 먹으며 사십 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모세는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교훈하기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라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만나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마시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처음에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잘 했습니다만 나중에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민 20:12) 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이러한 역사적인 내용들이 나타나는데, 신약 성경에서 펼쳐지는 말씀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는 명령입니다. 이 말씀이 과연, 오늘 먹고 마시는 한 끼 식사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는 식의 교훈이겠습니까, 아니면 그것까지 포함하여 내 인생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셨을 때 먹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것과 관련된 여러 행동을 하셨는데, 먼저 우리는 예수께서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먹지는 않으신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셨고, 수가라는 동네에서도 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면서 물을 달라 하셨지만 물을 드셨다는 말씀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밝히셨고, 그 후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 4장 참조)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를 다루시는 신약 성경의 내용을 보면, 구약 성경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를, 조금 더 가깝고 조금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설명하시고 보여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금식하셨고, 혼인 잔치에 가셔서 없던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시고는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0)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행동 뒤에는 어떤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전혀 식사를 하지 않으셨던 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7장 31절부터 보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누가복음 7:31-32)
여기에서 “아이들”은 이 세대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즉 이 세대 사람들이,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라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누가복음 7:33-35)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시기 몇 달 전에, 예수님의 친척집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에 대해서는 이사야서와 말라기서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사 40:3-4, 말 3:1, 4:5 참조)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광야에서 하나님께 양육을 받고 석청, 메뚜기 등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는 특이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마 3:4 참조) 그런데 이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목표는 오로지 자기 뒤에 나타나시는 메시야, 이스라엘 백성이 그 오랜 기간 동안 기다려 온 메시야가 오실 때가 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그 일을 위해 살아간 사람입니다.
요한이 다른 사람들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같이 잔칫상에 앉지도 않고 같이 밥을 먹지도 않으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세리들과 죄인들과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면서 공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죄에서 건져내기 위해 역사를 움켜쥐고 운행해 오셨고, 운행해 오신 역사의 한 기점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예수님의 사자로 세례 요한이 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대해 판단했습니다.
성경은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를 굉장히 철저하게 설명합니다. 그 내용도 굉장히 많습니다. 무심히 읽고 지나갈 성경 내용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먹고 마시는 모든 문제가 우리 인류의 운명과 그대로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 문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의 문제, 예수께서 세상에 사시는 동안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말씀하실 때 다루신 여러 가지 문제들 속에 먹고 마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오해를 받으셨습니다만, 여러 이야기를 하시며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을 보면 바리새인 중에 한 두령의 집에서 안식일에 떡을 잡수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시기에 떡을 잡수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셨기 때문에 음식은 드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식사가 우리가 친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거나, 회사 상관과 약속이 있어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식이겠습니까?
예수께서 입에 넣으시고, 그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떡에 관한 모든 문제는 바로 십자가에 달려 바쳐질 참된 제물인 자신의 몸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 한 끼도 스스로를 즐겁게 하시기 위해서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고, 모든 것이 우리의 운명을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나게 깊은 뜻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먹는 문제를 지적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마태복음 15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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