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밥 먹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날도 밥상 앞에서 잠깐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막내아들이 밥상 앞에서 제 얼굴을 보더니 “아빠!” 하고 불렀습니다.“왜?”“밥 잘 먹겠다고 하나님 앞에 인사했나?”그 말을 듣고는 ‘내가 뭐라고 기도했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습관대로 기도했던 것뿐이었습니다.“그래, 맞아. 인사했어.”그 후에 기도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기도는 어느 종교든, 하는 방법이나 내는 소리가 비슷합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나 ‘여호와’, ‘예수’라는 이름이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의 차이지, 원하는 것이나 간구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종교는 거의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어떻습니까? 우리 육신의 아버지에게 말하듯, 나와 가장 가까운 분과 대화하듯 기도드립니까? 참으로 내 영혼의 기도가 그러합니까? 혹시 종교적인 습관에 젖어서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자세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맹목적으로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하면 급박한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지만 평소에는 기도를 멀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 때이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마음 자세와 행동이 결국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끊임없이 계속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공기를 접하고 호흡하며 살듯이 마음속 어려움이나 즐거움, 기쁨 등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기도로 고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기도의 외형적 모양이 어떻든지, 기도의 자세를 갖추었든 그렇지 않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쉬운 기도가 아닐까요?
현재 우리 사회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많은 교파가 파생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파가 많아도 기도하는 방법이나 기도에 대한 생각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하면, 범사에 감사는 언제 합니까? 항상 기뻐하라 하셨는데 기뻐하는 것은 언제 합니까? 이 세 말씀을 나누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행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그 다음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 없이 성령 충만을 논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경험과 별난 은사를 추구하며 몸부림하며 기도하지만 믿음의 생활은 전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신 내용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귀하다저 광야 같은 세상을 끝없이 방황하다가위태한 길을 떠나서 주께로 내가 이끌려그 보좌 앞에 나아가 큰 은혜 받게 하시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이때껏 지은 큰 죄로 내 마음 섧고 아파도참 마음으로 뉘우쳐 다 숨김없이 아뢰면주 나를 위해 복 빌어 새 은혜 부어 주시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주 세상에서 일찍이 저 요란한 곳 피하여빈들에서나 산에서 온 밤을 새워 지내사주 예수 친히 기도로 큰 본을 보여 주셨네 (찬송가 482장)
이 가사들을 음미해 보십시오. 우리가 꼭 해야 할 말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기쁘고 감사하다는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그 기도 시간에 혹 찡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아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위한 기도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저도 기도를 무척 많이 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 보니 내 개인과 싸우는 기도가 더 많았습니다. 찬송가 가사에 “이때껏 지은 큰 죄로 내 마음 섧고 아파도 참 마음으로 뉘우쳐 다 숨김없이 아뢰면”이라고 했습니다. ‘이때껏 지은 큰 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저지른 낱낱의 죄에 대해 수다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안 이후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낱낱의 죄보다 더 큰 것이 하나 있었는데, ‘죄 지을 수 있는 나 자신, 하나님 앞에 약합니다.’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내 속에서는 미움이 솟아오르고 용납하지 못할 일들이 나를 꽉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힘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가 있지만,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기도가 찬송과 동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다 갑자기 찬송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하다가 성경 말씀을 찾아보고 싶을 때가 있고,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라는 찬송가는 참 멋있는 노래입니다.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알게 된 사람이 그때부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찬양을 한다면 과연 그 찬양이 자기 마음과 직결되어 있겠습니까? 우리는 국경일에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고, 광복절에는 따로 광복절 노래도 부릅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 입장에서 그런 노래들에 담긴 감정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가사를 보고 따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갖는 것 같은 감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겪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읽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 백성들 중에 한 나라, 이스라엘을 정하셨고, 이스라엘의 조상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요셉과 야곱, 이삭에서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 육십만 명 정도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라는 지도자에게 이끌려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하나님의 부탁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을 절대로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겠다고 했을 때, 바로 왕은 멀리 갈 것 없이 그냥 여기서 희생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꼭 삼일 길을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담판 지으려 했지만 할 수 없이 하나씩, 하나씩 꺾여갔고 마지막에 혼쭐이 난 후에야 그들을 놓아 주었습니다.
떠나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랐습니다. 양고기를 집안에서 먹지만 뼈는 꺾지 말라는 부탁도 받았습니다. 그러한 예를 갖춘 후에 육십 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합니다. 그 뒤를 이집트의 많은 군병들이 따라왔습니다. 놓아주긴 했지만, 부려먹던 미련이 남아서 끝까지 따라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달아나다가 홍해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서는 군병들이 쫓아오는 것입니다. ‘차라리 떠나지 않았다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놓임을 받고 이집트를 떠나왔는데 큰 바닷물이 앞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그 뒤에서 이집트 군병들이 따라오고 있으니 진퇴양난입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물 위로 손을 내밀었고, 물이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물 벽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한 번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서해 바다에 섬과 섬이 마주보고 있는 곳이 있는데 썰물때 물이 빠지면 그 가운데 언덕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관광지로 삼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탈출할 때 물이 갈라진 것은, 물이 빠져나가서 언덕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깊은 바다가 갈라져서 양 옆으로 물 벽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이 하나도 없는 그 가운데 맨 땅을 밟아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뒤를 이집트 군병들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다 건너가서 언덕에 섰을 때, 물이 다시 흘러 군병들은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로 들어갔고, 광야에서 사십 년간 생활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실제 생활이며 직접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 선지자들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오셨고,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 만방에 복음이 전해진 후에, 거듭난 사람들은 그 일을 교훈으로 삼아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나라 가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그 길을 보고, 그 지도를 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교훈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칩니다. 우리 영혼은 이 말씀을 따라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아뢰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왕과 군인이 뒤따라와도 돌진해 나갔듯이 우리의 싸움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엡 6:12 참조 기도를 한다는 것도 오로지 한 가지, 하나님을 향해 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염려와 걱정, 내 모든 위신, 이 모든 것을 다 부서뜨리며 하나님 앞에 아룁니다. 내가 아무리 단단한 마음을 가져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충격을 줄 때, 그 단단한 마음도 무너집니다. 굳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의 방식을 찾기 전에 기도는 어떤 때, 어떻게 해야 하며 왜 그 기도가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온을 향한 이스라엘의 기도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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