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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010년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
이 강연은 제35회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 중 2010년 10월 10일 저녁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저는 이 구절을 대하자마자, 솔직하게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무엇을 하든지”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먹는 문제에 대해서 율법에서 자세하게 다룬 내용이 있습니다. 또 지금 시대에 와서 우리는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어떠한지, 먹는 문제에서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 앞에, 과연 이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또 자기 생활 속에서 이 말씀이 조금도 거리낌 없이 통과된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매일 내 생활 속에서 지나가는 시간을 생각하며 이 구절을 생각해 봅시다. 육체를 가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내 모습 속에 이 성경 말씀이 얼마나 살아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 31절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31-33절)
이 글을 쓴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이야기를 한 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라고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자기 간증을 합니다. 우리 생활 속에는 말할 때나 어떤 일을 결정할 때나 매일 매일 선택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하는 말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함께 읽고 생각하는 중에 이러한 말씀을 다루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온 많은 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그저 교리로 막연하게 존재하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매일이라는 시간마다 나를 붙잡아 주고 나의 선택에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말씀일까요? 우리는 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성경 속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먹는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음식을 먹었을 때 그것이 내 몸을 어떻게 통과하여 나에게 영양소를 공급하고, 그 영양분은 세포들을 통과하여 나의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는 의학적인 내용을, 성경을 아는 입장에서 살피다 보면 그 원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우리는 조금 착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 앞에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성경 말씀과 우리의 지식을 통해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창조하셨고 우리의 생명을 어떤 방법으로 유지시켜 나가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으며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쥐고 계신지를 우리가 알아갈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 성경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순종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매우 쉬운 구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세밀하게 읽다 보면 이 성경 속에는 먹고 마시는 문제가 자주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가 음식을 먹고 마셨을 때 몸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하게 지식적인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신 것을 부지런히 살피고 자세히 연구하다 보면, 우리는 정말 깜짝 놀라게 됩니다. ‘내가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가 먹고 마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활 속에서 내가 지금 선택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놀라는 것입니다.거듭난 것이 무언지도 모르고, 거듭난 후에도 교제가 무언지 생각도 하지 않고 상관없이 살면, 이런 구절을 쉽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의 초보적인 구절로 보고 스치는 말씀으로만 봅니다. 그러나 거듭난 경험을 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서 교제하며 서로 부딪히고 고민하다 보면 이러한 말씀들이 내 속에서 정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40일간 주리신 이유“먹든지 마시든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성경 속 많은 인물들이 먹고 마시는 문제를 다룹니다. 이 고린도전서를 쓴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고, 모세도 다윗도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예수께서는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적나라하면서도 우리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방법으로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를 다루기 전, 예수님은 먼저는 굶으셨습니다. 세상에 사람들 앞에 나타나셔서 일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굶으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으로서 짧은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서 사시면서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먹고 마시는 문제로 분명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성경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길을 선택한다든지, 어떤 사람과 대화를 선택한다든지, 어떤 말씀을 하신다든지 할 때 예수께서는 절대 우리 인간들처럼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셨고 모든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이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없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말씀을 먼저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이 우리에게도 숙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태어나셔서 사람들 앞에 일하러 나서시기 전에 40일을 굶으셨습니다. 사람이 40일을 굶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몸은 지방조직이나 근육에 들어 있는 지방 또는 단백질을 분해하여 에너지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5주에서 8주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40일이면 6주 가까이 되니까, 예수께서는 사람의 한계점까지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님 아들이신데 그까짓 40일 굶는 것 뭐 힘들겠나.’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히브리서를 보면 우리 모두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던 대제사장 예수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4:15) 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구약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해 오신 하나님께서 이제 사람의 몸을 쓰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한계에 가까운 40일이라는 시간을 음식을 안 드시고 주리셨다는 사실이 먼저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굶으셨을까요? 위력을 보여 주시려고 주리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쓰고 오셨고 그때는 30세 정도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 젊은 분이 40일이란 기간을 굶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또 왜 40일을 택하셨을까요? 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 ‘40’이란 숫자가 여러 번 나옵니다. 창세기부터 보면, 제일 먼저 ‘40’이라는 수가 나오는 곳이 노아 홍수 때입니다. 40일간 비가 내렸습니다. 또 그 다음으로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에서 지냈고 또 광야에 40년 동안 도망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40이라는 숫자가 성경 속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
성경에 ‘40’이라는 숫자가 나타나는 부분을 보면, 참 특이합니다. 40일, 혹은 40년, 이러한 시간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항상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 동안 비가 쏟아진 후에 세상은 지금과 비슷한 세상이 됩니다. 그 전의 세상은 지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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