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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대 파노라마

제36회 성경탐구모임 2004년 7월 27일 저녁
-제36회 성경탐구모임 2004년 7월 27일 저녁
 
 
...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 (요한복음 7:46)
 
 
야곱과 요셉의 죽음
 
 
창세기 마지막 장에는 요셉의 죽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세기 50:24-26)
 
 
사람이 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의 생애라 할지라도, 요셉처럼 멋있게 전개된 생애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셉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먼 훗날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갈 것을 내다보고 자신의 해골을 가져가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 역시 요셉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그 몸은 아들이 출세한 그 나라에 묻지 말고, 고생스럽겠지만 어렵게 살아가던 가나안 땅에 사 놓은 묘지 터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야곱과 요셉의 웃대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곳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시신을 가지고 가나안 땅까지 가서 장사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어 보면, 이것과 바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아꼈던 왕이 죽은 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왕이 들어서서 요셉과 그 형제들의 후손들을 억압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손들은 이집트에 머물며 많은 자식들을 낳았지만, 아주 고생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가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출애굽기 12:40-42)
 
 
이것이 바로 엑소더스, 영광의 탈출입니다. 이 내용은 ‘십계’라는 영화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날을 기념하는 영화입니다.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영화를 봅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십계명을 받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나온 것입니다. 아무 뜻 없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노인과 아이, 여자들을 제외하고 장정만 60만이라는 큰 무리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올 때, 이들은 한 가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자기들 몸만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 가도록 동기 부여를 한 몇 대 조상인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출애굽기 13:19)
 
 
요셉의 유언대로 후손들은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이집트를 나왔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로만 흘러간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피라미드일 것입니다. 피라미드는 아주 거대한 돌 건축물이자 왕들의 무덤이었습니다. 이집트는 현대의 과학자들도 놀랄 만큼 많은 것들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 중에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돌을 쌓아 산같이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무덤과, 그 안에 있는 돌 건물만큼 오래된 미라입니다. 왕들의 미라는 시체가 삭아서 부서졌거나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인체의 모양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약품에 담가 놓으면 말랐던 미라가 그대로 불어나서 현존하는 사람과 같은 모양이 될 정도로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체 보관 방법이 야곱에게 행해졌고 요셉에게도 행해졌는데, 그 시체가 몇 대만에 가나안 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유대인을 보라
 
 
세월이 흘러서 요셉의 유골을 이스라엘 땅에 안치시킨 때로부터 1600 여 년이 지난 서기 33년 경에, 각 나라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 수도 예루살렘에 찾아와서 양을 잡고, 소를 잡고, 비둘기를 잡고, 염소를 잡아 피를 쏟고 제사를 드리는 예식을 하기 위해 모인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서 그들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고 말씀하시며 팔레스타인, 즉 현재 이스라엘 땅으로 가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이삭은 또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 야곱이 열두 형제를 낳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영어로는 조셉(Joseph)이라고도 하는 요셉입니다. 그들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게 된 동기와 원인이 바로 한 위대한 분이 오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강연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강연을 듣던 유대인들은 강연하는 자를 죽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는, 옷을 벗고 달려들어서 돌로 쳐 죽여 버렸습니다. 돌무더기를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증인들이 옷을 벗어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라는 청년 앞에 두었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사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데반이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죽고 난 뒤에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다메섹(현재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를 만나 거꾸러졌습니다. 그날 이후 예수를 제일 미워하고 싫어했던 이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이름을 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기 동족을 억압하는 원수의 나라, 로마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전 세계에 교인들이 가장 많다는 가톨릭이나 신교를 통틀어도 이 사람만큼 위대한 사람이 지상에 또 있었을까 싶은 그 바울입니다. 바울은 신약 성경의 반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이 성경은 역사이고, 현실이며, 확실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성경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산중에서 도를 닦으면서 상상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종교 경전과 비교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저는 욕심이 컸던 사람입니다. 그 욕심은 제 나이의 여느 사람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책이든지 책이라는 페이지를 넘고, 책이라는 고개를 넘어 이 뇌세포를 한번 채워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악착같이 책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경에 나타난 드라마만큼 화려하고, 웅장하고, 멋진 파노라마는 보지 못했습니다.
 
 
꼭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저 아래쪽 지중해에는 코르시카 섬이 있습니다. 거기서 녹슨 대포 위에 걸터앉아 놀던 한 개구쟁이 소년이 후에 프랑스를 지배하게 되었고, 전 유럽을 뒤흔드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입니다. 누군가가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유대인을 보라.”
 
 
유대인이 바로 그 흔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성경은 사람이 지어낸 그저 흘러간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진행된 한 민족의 생생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에 사는 아가씨를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가씨를 가까이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젊은이는 그 아가씨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는, 다정다감하게 깨가 쏟아지도록 잘 지내며, 아들 딸 잘 낳고 행복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꿈이었답니다. 긴긴 밤의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말이 보통 말일까요? 우리 모두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세상 일이 꿈과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요셉의 꿈과 바로 왕의 꿈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용꿈이나 돼지꿈에 비교될 수 있는 꿈이 아닙니다.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여러분이 분명하게 기억하셔야 할 성경 구절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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