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2012. 7. 31. 강연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브리서 4장 12절부터 16절까지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다’고 했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어로는 ‘powerful’이라고 되어 있는데, 매우 강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살아 있는 생명이 있으며, 그것이 강력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좌우에 날선”, 양쪽에 날이 서 있는 어떤 칼보다도 더 날카로운데, 어느 정도로 날카로운가 하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할 정도라고 했습니다.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흔히 어떤 무기가 위력이 있다, 군대가 위력이 있다고 할 때는 강력한 미사일이나 핵폭탄 같은 것을 생각합니다. 반면에 강도들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칼은 무기는 될 수 있어도 위력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표현은 참 특이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글을 쓰기 전, 구약 시대에도 전쟁을 치르기 위해 수레를 끄는 말들이 있었고 전차 부대가 있었고 칼이나 창 같은 온갖 무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강한 힘이 있는데, 그것이 강함과 동시에 아주 예리하다고 했습니다.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가 환자의 몸을 열고 수술을 할 때,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수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예리한 칼과 아주 가느다란 도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무기나 돈과 같은 세상의 어떤 강한 것보다 의사의 손에 있는 수술 칼과 꿰매는 바늘이 강하고 또 고마울 것입니다.그런 시각에서 생각해 봅시다. 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데 이것이 또 예리하기도 하다고 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접할 때 이 내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우리는 언젠가 내 마음속에 이런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서 완악했던 내 마음이 쪼개지고, 그 말씀 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간증이 우리 개개인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운동력을 가지고 있는 이 말씀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수많은 세월 속에 이 말씀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힘을 보여 주는 창조 이후 역사우리는 먼저 빛과 어두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었습니다. 성경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창 1:2-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우주 공간 전체는 어두움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그렇습니다. 사진을 보아도 우주 전체가 환하지는 않습니다. 어두운 공간에 촛불이 하나씩 켜져 있듯이 빛이 반짝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두신 장소가 있었습니다. 지구라고 일컫는 땅에 태양 빛이 비취고, 어두운 데 떠 있는 공과 같은 땅의 한 쪽이 빛을 받았습니다. 손에 손등이 있고 손바닥이 있듯이, 한 땅덩어리에 두 면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전을 합니다.성경에는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빛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빛의 원천에 대한 설명도 있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하는 말씀처럼,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그 빛을 뛰어넘는 빛에 대해 설명하기도 합니다.창세기에 “빛이 있으라” 하신 명령과 함께 빛이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 빛을 좋아하셨습니다. 어두움에 대해서는 좋았다,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하심과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구가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5) 하는 움직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물로 꽉 싸여진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힘, 또 땅과 물이 나뉘게 하는 운동력이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씀과 동시에 우리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성경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우리는 이 천지창조 이야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씀이 히브리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하는 말씀과 항상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자주 말씀하신 것을 보며 그 내용은 나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구분하는 것은 좋지만, 음식을 편식하듯 읽을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마리아처럼 마음속에 두고 기다려 보기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눅 2:19 참조)이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 “나뉘게 하리라” 하셨고, (창 1장 참조) 사람을 만드신 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 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그것을 먹었을 때는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창 3:11) 하셨습니다. 그리고 뱀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창 3:15) 하는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여자의 후손에 대한 예언을 하시고 그때부터 한 역사를 이끄셨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창 15:4)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훗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한 민족을 이끌어 내실 것에 대한 약속이며, 동시에 그 민족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임하실 것을 말씀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는 그 씨에 대한 말씀이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라는 한 아들로 현실에 나타났지만, 역사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씨의 주인공은 훗날 이스라엘 땅에 서게 되실 독생자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먼 곳을 바라보며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 12:2-3),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창 22:17) 하는 약속으로 계속해서 그들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모세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 3:14) 고 하시고,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출 3:6)는 이름으로 모세를 교훈하셨습니다. 성경의 이런 내용들은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써 놓은 책의 한 줄이 휙 지나가듯 우리 눈앞을 휙 지나갑니다. 그러나 세상 어떤 사람이 써 놓은 위대한 글은 마음에 교훈이 되고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줄지는 모르지만, 살아서 운동력을 발휘해서 역사의 대장정 속에 그대로 파고 들어가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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