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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 ‘교제’란 무엇인가요?

-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얼마만큼 착한 일을 하고 깨끗하게 살다 일생을 마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착한 일이나 깨끗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생각하다 보면 삼손의 일생이 생각난다. 삼손은 사람들과 싸우고, 죽이고, 또 들릴라에게 휘감겨 평생을 망치면서도 적과의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노예로 부림을 당하고, 힘이 다 빠지고, 눈알까지도 빼어진 채로도 삼손의 전쟁 준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마지막에 삼손은 있는 힘을 다해 기둥을 무너뜨려 기둥과 함께 쓰러짐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다. 그는 죽는 그 순간,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은 적을 처리했다.     율법으로나, 종교적, 도덕적인 기준에서 삼손을 본다면 그 누구도 삼손을 깨끗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삼손은 아주 추접하고 여자 관계도 무척 복잡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적이 있었고, 그 적을 향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삼손의 생애는 도덕이나 율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훗날 천국에 가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적과 싸웠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 개개인도 세상에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이런 저런 죄를 짓는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로 영생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해결한다. 이 일은 인간으로서 호흡하며 사는 동안 계속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해결된 그것으로만 만족하고 끝나버리면 안될 것이다.     하나님의 적과 나와의 싸움이 없는 것이 큰 문제이다. 삶 속에 하나님의 적과의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실패자’인 것이다. 자기 혼자 나름대로 이런 저런 열매를 맺는다고는 해도, 다른 영혼들이 구원받는 그 열매는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는 말씀에서처럼, 몸으로 행해 놓은 결과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눅 16:9) 고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는 저 영원한 처소에서 나를 맞이해 줄 영혼들이다. 그 결과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없으면 부끄러운 구원인 것이다.     이것은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만큼 정확한 논리는 없다. 진짜 두렵고 떨리는 이야기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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