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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 구약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44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2012. 7. 30. 강연신약과 구약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우리는 먼저 에베소서를 중심으로 교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방의 사도 된 유대인 바울이 이방인으로 구성된 에베소 교회에게 보낸 서신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원래 하나님을 섬겼고 메시야를 바라고 또 기다렸는데, 이제는 육체로는 이방인으로서 듣는 입장에 있던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이방인들은 전에는 멀리 언약 밖에 있었고 할례당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일컬어지며 천대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둘이 한 성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인물이 하나님의 손을 통해 창조되듯이, 그 몸이 자라가고 (엡 4:16 참조) 또 건물들처럼 연결되어 간다고 했는데, 엡 2:21 참조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에베소서의 내용은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베소는 터키에 있는 항구 도시였는데, 사도행전 19장에는 에베소에서 전도하는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성경 말씀을 통해 거듭남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내리신 성령으로 교회가 자라 간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방인인 에베소 교인들에게 쓴 글의 언어, 말한 방법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대인으로서 교회를 보는 관점과 이방인으로서 교회를 받아들이는 관점의 출발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정립되어 있지만 출발이 다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고 동일한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성령이 하나이니 …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엡 4:4-5) 라는 사실로 통일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과 이방인이 도착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시작점은 조금 다릅니다.처음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담이라는 한 사람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그 순간에 언젠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나타날 것이고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는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면서 준비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 확실하게 선택된 이 민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방인인 우리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행동했고 어떤 식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어떤 식으로 하나님을 배반했느냐 하는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또 유대인들의 선조들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창 12:3 참조) 고 약속하신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교회와 성경에 대해 알아 가는 사람들은 이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성경에 결정이 나 있는 것입니다.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구약성경을 공부할 것인데, 성경 말씀을 통해서 확실히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가 내 영혼의 주인이시라는 것까지 다 인정하게 되고 나서 성경을 보다 보면 유대인들을 비판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기 시작하면 나 자신에게도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로지 자기 신앙, 자기 속에 있는 믿음을 충족시키려고 성경에 있는 구절 몇 개만 가지고 믿어지느냐 믿어지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시고 역사를 경영해 가셨던 방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속에서 한 민족의 시작을 이미 보고 계셨고, 그 민족 속에 당신의 독생자께서 사람의 몸을 쓰고 오실 것을 미리 결정하셨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지만,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인들의 이야기, 그들의 율법과 생활 습관, 성전과 성막, 많은 사사들과 그 후에 일어난 많은 왕들에 대한 내용이 그저 이야기나 지나간 역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의 시대를 이런 역사로 장식하셨다고, 마치 삼국지나 수호지 읽듯이 구약성경을 취급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어떠한 방법으로 일하시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또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서로 맞추어 보고 비교해 보고 연구해 보면,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엄청난 이야기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그냥 보면 다른 것은 다 귀찮고 오직 내가 구원받은 구절 그 하나만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구약성경 속에 나타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중요한가? 예수님이 유대 땅에서 태어나 33년 사시고 유대인들에게 모함을 당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서 그로 인해 내 죄가 사함 받은 것, 그것만 믿었으면 되었지.’ 하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틀리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2:20) 고 했듯이, 우리가 서 있는 ‘터’는 바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신약의 주인일 뿐 아니라 구약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한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며 유대인들을 질타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네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도 하셨습니다. (요 8장 참조)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유대인들이 볼 때 참람한 말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과 동격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들이 합쳐져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준한 사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냐?”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 (요 8:25) 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성경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구약성경입니다. 예수께서는 신약성경이 기록되기도 전에 유대 땅에 태어나셔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우리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는 내용처럼, 하나님께서 아담이라는 한 사람을 흙으로 지어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그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갈비뼈 하나를 취하셔서 여자의 몸을 조성하셨다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시작이며, 인간 육체 역사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선악에 눈을 뜨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 내용을 우리는 창세기 3장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 계 21:9 참조 라고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발표되어 있는 교회의 개념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이유와 그 순서를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도 정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관계가 구약성경 속에 계속 반복해서 소개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구약성경 속에 나타나 있는 그러한 이야기들과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교회의 개념을 연결시키려 하지 않고, 또 그럴 만한 힘도 없습니다.또 예수님은 천국이 열리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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