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7.06>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32회 마태복음 9:1-8마가복음 2:1-12누가복음 5:17-262001. 9. 1. 강연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태복음 9:1-8)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이 내용은 갈릴리 호수를 끼고 있는 갈릴리 주변 지방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런 성경 내용을 읽으면 “그 갈릴리 오신 이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았네” (찬송가 84장) 하는 찬송가가 떠오릅니다. 찬송가를 부르다 보면 마음이 그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느낍니다.또 만약 우리들이 이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때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갈릴리에 다니셨던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다시 갈릴리에 가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과 예수님은 굉장히 가까운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아주 멀리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갈라디아 사람들 역시 우리처럼 예수님으로부터 먼 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훗날 갈라디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받아들였을 때 사도 바울은 그들을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 3:1) 사도 바울의 이 책망 속에는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멀리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갈라디아 지방의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임하시고, 그들로 복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8) 하는 말씀으로 미루어 보면, 갈라디아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듣고 마음으로 보고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교리가 들어와서 갈라디아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자 사도 바울은 이들을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는 지금 갈릴리보다도, 예루살렘보다도, 저 갈라디아보다도 훨씬 더 먼 이국땅에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세월도 이때로부터 2천 년이 지나왔습니다. 구약성경에 아주 중요한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그것도 늦게 난 아들, 희망 없는 가운데서 생긴 아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했다는 구절입니다. (창 22:1-14 참조) 만약 하나님께서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면 지금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해도 순종할 자신이 없습니다. 정말 자신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답게 그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그 산을 멀리 바라보았다는 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나이든 노인의 눈으로 먼 곳을 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독자를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이 모든 일은, 하나밖에 없는 독자를 바쳐야 하는 인간의 심정이 하나님의 사정과 겹쳐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일의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16) 하신 대로 하나님의 독생자를 바쳐야 될 일의 그림자로 이삭이 바쳐질 뻔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많은 역사가 흐른 후,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 1:29) 라고, 예수가 세상 죄를 짊어지신 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구약시대의 많은 선지자들이 증거한 대로, 또 모세가 증거한 대로, 제사를 통해 희생되어 간 그 모든 죽음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예법과 제사 방법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느 날 예수께 이루어졌을 때,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 (요 19:30) 는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 2천 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는 저 먼 곳을 돌아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일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가까운 과거의 일이었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시점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에서 보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류의 역사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때를 기준으로 하여 BC와 AD를 나누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이전과 이후를 구분한 것입니다. 영원에서 보시는 하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는 일은 바로 예수께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하신 그때 완성되었습니다.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그 후로부터 일어나야 하는 일들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고 있고, 믿어야 될 사람들이 남아 있고, 훗날 언젠가 그분께서 오셔서 해야 될 일이 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이전의 사람들은 많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림으로써 예를 갖추었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우리들은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었다’ 하셨던 그 예수님을 뒤돌아보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그 중요한 첫 일을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저는 언젠가 이 찬송가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참 즐거웠습니다. 주님 십자가 위에 달릴 때 그대 그곳에 간 일 있느뇨오 그 생각 떠오를 때 이 몸 떨려 오네그대 그곳에 간 일 있느뇨  (새찬송가 643장   주님 십자가 못 박히실 때)   주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곳에 간 일 있느냐. 우리는 기록된 성경을 통해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