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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 44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12. 7. 28. 강연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요즈음 제 마음속에는 노래 아닌 노래가 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가면서 여러 가지로 바쁜 중에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내가 말씀을 알게 됨으로써 나에게 주어진 일들, 그런 일들을 통해 나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형제자매, 그리고 우리의 입들을 통해서 거듭나게 될 많은 영혼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나의 것이라고 자랑할 만한 것은 조금도 없다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우리는 모여서 함께 찬송가도 부르고 함께 성경도 읽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 입으로 말을 하고 듣는 사람은 자기 귀로 그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의 말이 실이고 듣는 사람의 귀는 바늘귀라고 생각해 봅시다. 실을 바늘귀에 꿰려면 바늘과 실 두 가지 사물을 동시에 보고 끼워 맞추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두 손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실을 꿰었을 때 바느질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그 말을 듣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계산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봅시다. 실을 쥐고 있는 주인은 누구이며, 바늘을 손에 쥐고 있는 주인은 누구입니까?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가르침이 옳으며 그것이 사후를 보장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많은 가르침들 가운데 나에게 들려지고 전해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말이 어디선가 출발해서 내 귀에 도착했습니다. 그것이 한 힘에 의해 좌우되었고 한 힘에 의해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면 참 쉽습니다. 귀는 항상 열려 있으니 입을 여는 사람이 말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말이 있고 많은 노래가 있고 많은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모든 것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이사야서 43장 15절부터 보겠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15-25)   우리에게는 평소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읽을 때도 우리가 찬송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대로 성경을 읽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열심히 찬송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2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에는 ‘나’라는 뜻의 말이 세 번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한 요한복음 1장 1절에 ‘말씀’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씀’에 내가 마구 떠드는 말이 속하겠습니까? ‘말씀’에는 그 말씀을 내신 분이 있으며, 그 말씀의 본체이신 분이 있습니다.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하십니다. 이 구절은 성부, 성자, 성신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그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누구라는 것을 우리에게 아주 명쾌하고 간단하게 말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이사야서의 구절을 영어와 함께 다시 생각해 봅시다.   I have formed for Myself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는 말입니다. 영어로도 나를 위하여 지었다, 합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도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씀도 이와 같은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 2:7 참조)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완벽한 한 인격체로 인정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고, 신약성경의 교회 이야기까지도 연결이 됩니다.그런데 “나의 찬송”이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흔히 찬송은 내가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찬송이 따로 있고 너의 찬송이 따로 있는가 생각하고 구분해 보려고 해도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hey shall declare My praise.   이 부분이 우리말과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우리는 찬송가라고 하면 교회 시대에 들어와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지은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만들어진 찬송가가 찬송가 같고, 요즘 만들어진 찬송가는 찬송가 같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 다윗이 시편에 남긴 ‘어디에서 부른 노래’, ‘마스길에 맞춘 노래’라고 해서 나오는 노래들은 그 당시 노래이고, 찬송가책에 나오는 노래들이 찬송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송이라고 해서 꼭 노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어 성경은 칭송한다, 받들어 어떤 것을 드린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에 비해 한국어 성경의 표현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린다고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노래를 부른다고 표현한 것입니다.우리는 이 내용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한 손에는 실을 들고 한 손에는 바늘을 들고 그것을 끼워 맞추었을 때 그것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도구가 되듯이, 누군가 말을 하고 누군가 듣는 입장에 있을 때 중요한 것은 그 입과 귀를 누가 주장하느냐, 그것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한쪽에 발표하는 주체가 있고 다른 쪽에 귀를 열어 주는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는 절대로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거듭난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한 분이 열어 주신 입을 통해서 다른 한 사람의 귀가 열렸을 때, 그 말씀이 그 영혼에서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원받았다’고 표현합니다.세상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안다고 자부하고 별로 어렵지 않다고 넘겨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늘과 실, 그 두 개를 한 손에 동시에 쥐고 계신 분이 어떤 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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