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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 저편으로 건너가자

마태복음 8:18-22누가복음 9:57-602001. 8. 11. 강연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18-22)이 말씀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서로 연결되는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너무 몰려드니 예수께서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명하셨는데,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동문서답 같습니다.이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고 생각하면 내용이 아주 간단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제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말들 가운데에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은 성경이고 하나님 말씀이다.’ 하고 넘겨 버립니다만 그때 그 시절, 그 상황을 더듬어 보면 이런 말씀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앞서서 예수님의 오심을 증거했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 1:15) 고 했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며 자기 뒤에 오시는 그가 오셔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2, 11-12 참조) 고, 곧 나타나실 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으니 그가 앞선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보다 앞선 분이라고 했습니다.그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면, 이 시절에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보다 앞섰다고 했던 예수께서 나타나셨을 때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 1:29) 라고 했는데,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은 예수를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신 분인 것을 알고 있으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알지 못했습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오직 세례 요한과 예수님만 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세상에 전파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고,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야 세례 요한이 한 일도 옳았고 예수님이 하신 일도 옳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대화에는 그러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이 마태복음 8장 내용도, 짧은 기록이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마태복음 8:18)   예수께서 바다 반대편 쪽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반대편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꼭 바다같이 물이 움직여서 갈릴리 바다라고도 합니다. 이때 예수를 둘러싼 많은 무리들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바닷가에서 건너편에 있는 지방을 향해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그저 ‘아, 건너가자 하시니 건너가야지. 예수가 가니까 우리도 따라가야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할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장터에 장을 보러 나온 정도의 사람들이었겠습니까? 요즘의 백화점을 생각해 보면, 그곳에는 각기 다른 직업과 지위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때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를 보며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것은 보통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제자들에게, 또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건너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얼마 안 되는 거리라 할지라도 예수께서 한 발짝 한 발짝 걷는 발걸음은 보통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라는 말씀을 하신 주인이기 때문입니다.또 건너가기 위해서는 무언가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타고 가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왜 건너가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까?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심이나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을 보고 자기에게 인기가 집중된 것을 느끼며 생각이 달랐을 것입니다.이때 유대 민족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선출한 왕이 꼭 필요했습니다. 왕궁에 앉아 있는 헤롯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힘에 눌려 억지로 참을 뿐이지 헤롯을 왕으로 인정하고 떠받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정신은 전혀 달랐습니다.그러한 사람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어느 내용을 보면 떡을 얻어먹은 이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왕으로 삼으려고 애를 쓰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까지도 내다보셨습니다. (요 6:1-15 참조) 자신을 둘러싼 무리들이 어떤 무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둘러싼 무리에 대해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마 15:32) 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때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얻어먹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귀한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먼저 그들의 허기를 채워 주었고, 그런 일로 인해 이 사람들은 예수를 붙잡아 자기들의 왕을 삼으려고 애를 썼습니다.그때도 예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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