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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복음서를 읽으면서 25회
- 마태복음 7:15-29, 누가복음 13:24-30, 2001. 7. 7. 강연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7:15-29)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7:15-18)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에게는 거짓 선지자라는 표시가 전혀 없습니다. 옛날 선지자들은 어떤 털옷을 입었다거나 하는 특이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엘리야나 엘리사, 모세나 세례 요한도 그랬습니다. (왕하 1:8, 마 3:4 참조) 그러나 이 말씀을 보면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 결코 특별한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라고 한 것을 보면, 양을 이끄는 목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양과 같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은 순한 동물입니다. 양은 잃어버린 양이기도 하고, 찾긴 바 된 양이기도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양의 옷을 입은 속에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양으로 보이지만 속에는 탈취하고, 빼앗고, 죽이는 힘을 가진 것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예수께서는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5)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눅 15:4) 고도 하셨습니다. 양을 찾으면 기뻐하고 돌아와서 즐거워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잃어버린 양은 동정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내용을 볼 때 그 잃어버린 양에 동류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나 사두개파 등의 종교 지도자들, 선지자들이 앞장선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를 따라다니는 무리들은 잃어버린 양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너희’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이 바로 양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끌어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속에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 있는, 양의 껍질을 덮어쓴 선지자라는 내용입니다.
거짓 선지자 중에 스스로 자기의 정체를 밝혀서 자기가 거짓되었다든지 잘못되었다고 발표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그 어떤 종파에도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참 선지자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지적하시며, 그들이 양의 옷을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벧전 2:25) 는 말을 했습니다. 길을 잃었던 양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양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모든 죄인은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죄에서 건짐을 받았고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온 목자 되신 예수님의 공로에 의해서 찾아진 양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벧전 1:22),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찾아왔던 한 종교 지도자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고,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아담의 피를 이어받아 죄인 된 인생은 이제는 예수의 피의 공로로,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가리움을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보시고 우리 각 사람을 용서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그 참빛 되신 예수님이 내 영혼에 비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참으로 내 영혼이 거듭났다는 마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됩니다.
 
피와 성신으로 거듭나니 …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그침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합동찬송가 451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흘리신 피 때문에 죄인의 피를 이어 온 우리 인간이 용서를 받았습니다.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벧전 1:18) 이라고 한 말씀대로, 아담이라는 죄인의 피를 이어서 태어난 우리 인생은 예수님의 피로 인해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찬송가 189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이러한 확실한 간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잃어진 양이 돌아온 것입니다. 죄인이 돌아선 것입니다.
 
생명책 위에 새로이 기록된 그 이름 내 것일세 
(새찬송가 293장   죄 중에 헤매던 나에게)
죄인은 자기가 그렇게 돌아섰다는 간증을 노래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서 베드로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벧전 2:25) 고 정확하게 칭해 주었습니다. 길을 잃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길을 찾았다, 찾긴 바 되었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영혼의 목자이자 감독이신 예수님께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9-10)
 
이제는 한 단계가 높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제 마음속에는 이렇게 해 주신 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된 사람들을 일컬어서 ‘양’이라고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사람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길 잃었던 자들이 돌아왔을 때,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자기를 낮추어 같은 형제자매라는 위치로 양 무리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 사함 받은 확실한 간증이 없는 사람, 잃어진 자기 영혼을 건져 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과 그 은혜의 찬송이 없는 사람이 교리적으로 구원을 배워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하고 알지만, 마음속에 한 번도 뉘우치지 않았으면서 그냥 양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고 믿는다며 배운 것으로, 속죄함 받은 경험도 없이, 죄에 허덕이다가 하나님 앞에 갈급해서 ‘내 영혼 살려 주십시오.’ 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우리는 다 같은 형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전도자가 되거나 목회자가 되면, 자기가 소속된 교파에서든지, 아니면 소개받고 찾아온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 앞에 불쑥 등장해서 다른 영혼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속에 구주께서 자신의 영혼을 거듭나게 해 주셨다는 간증이 없으면, 설교자도 듣는 사람도 똑같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2천 년 사의 가장 슬픈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 하신 말씀대로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져다주신 이 경험이 없이 “주여!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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