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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소리 중의 소리’ 포럼

- 마태복음 7장 13절-29절, 누가복음 13장 24절-30절
■  실제적인 부분에서 넓은 문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생각해 봅시다. 어려서부터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 있을 것입니다. 유치원에 들어갔다면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학교에 들어갔으면 또 거기서 만난 아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라는 동안 한 동네에서 친하게 지낸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듯 세상을 살다 보면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친한 사람들끼리만 가까이 지내다 보면 그런 만남을 교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모이는 것이 교제이고, 남성들은 남성들끼리 모이는 것이 교제가 됩니다. 또 자기가 어떤 주장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주장이 맞는 사람들끼리만 교제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몬 1:6) 고 했고, 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구원받은 지 10년이 되었든 5년이 되었든 1년이 되었든 구원받은 개인의 간증에 서로 공감대가 형성될 때 ‘내 형제구나, 자매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제를 하다 보면 그 가운데 다른 친구가 인도되어 오거나 어쩌다 함께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이 섞여 함께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조심하게 됩니다. 그 영혼에게 혹시 문제가 생길까 봐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서 갖는 마음이 아닙니다. 한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같은 마음으로 다른 영혼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이 형제자매들 가운에 섞여 있다가 구원받게 되면,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면 가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옆에 면회 왔다가 그 이야기를 함께 듣고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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