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71년, 독일에 간호사로 갔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저는 외국에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라이프 지나 타임 지 같은 잡지들을 가지고 다녔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도 다녔습니다. 또 한 달에 한 번 꼴로 미국 영화들을 보러 극장을 다녔습니다. 그야말로 외국은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난한 한국을 보다가 유럽의 알프스 산 같은 곳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요. 또 이탈리아는 얼마나 아름다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미국도 정말 잘 사는 나라라고 하니까 꼭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을 구경할 마땅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는 간호사들이 독일, 미국, 캐나다 등 외국으로 많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나도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에서 취업하면 외국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중학생 때부터 커서 간호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학교의 간호학과에 들어가 3년 동안 공부하고, 졸업 후 1년 동안 메디컬센터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 후에 독일 해외개발공사를 통해서 독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독일에 가서는 월급을 받으면 제가 원하는 대로 외국 구경을 했습니다. 집안에 경제적 여유가 없는 다른 간호사들은 번 돈을 한국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에 구경하러 다니지 못했지만 저희 집은 제가 돈을 보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월급을 받으면 한 달간 휴가를 받아서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인접 국가들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박광철 씨를 알게 되었고 그와 다른 두 명의 남자들이 한국인 간호사가 많던 제가 있던 병원으로 놀러오고는 했습니다. 타지에서 서로 가진 것 없이 지내던 때라, 병원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던 다섯 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그 사람들도 같이 밥을 지어 먹으며 인사도 나누고 서로 이국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외국 타향 생활에 외로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알게 된 박광철 씨와 빨리 정이 들었고, 3개월 만에 약혼하고 2개월 만에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제가 독일에 가는 것을 반대했던 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1년만 있다 오겠다고 해서 유럽 여행하는 셈 치고 보냈더니, 갑자기 부모 없는 자식 같이 멀리서 자기들끼리 결혼한다고 연락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표를 사 보낼 테니 당장 들어오라고 했지만, 저희 둘은 결혼 약속을 다 해놓았기 때문에 독일에서 주위 아는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은 가까운 교회에서 독일 목사의 주례 하에 치렀습니다.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르기는 했지만, 저는 기독교와는 무관하게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살면서 교회 한 번 나가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가끔 절에 다니셨고, 할머니는 간혹 점을 치러 가시고는 했습니다. 남편은 총각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구원’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독일에서 결혼하고 8년을 살다가 1979년에 미국에 간호사 자격으로 취업 이민을 왔습니다. 처음에는 인디아나 주에서 지냈는데 여름에는 몹시 덥고 겨울에는 눈이 정말 많이 내리고 추워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도 없어서 지내기 힘들어서 LA로 가기로 하고, 차에 짐을 싣고 가족들과 일주일을 걸려서 캘리포니아 주 LA로 이사를 왔습니다. 미국은 다른 주로 옮겨가서 간호사 일을 하려면 시험을 다시 봐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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