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처음부터 읽어 가다 보면, 사도들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 이튿날인 안식일에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예수가 살았을 때에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가고서는 예수가 살아났다고 말할 것이라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했습니다. (마 27:62-66 참조)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의 목소리가 초대 교회 시대를 장식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2:20) 고 발표했습니다. 신약 성경인 에베소서가 기록되던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구약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뒤였고, 그 구약 말씀 속에 숨겨져 있던 엄청난 비밀을 사도들은 신약 성경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이 교회에게 남겨진 말씀입니다. 요나서 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두 번 임한 것은 요나가 말을 듣지 않아 하나님께서 한 번 더 말씀하신 것에 불과한 일일까요?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자식에게, 부모가 ‘내가 한 번 더 이야기한다. 응?’ 하는 식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요나에게 노하셔서 요나를 물에 던져지게 했는데,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려고 두 번째 말씀하셨던 것입니까? 우리는 이 내용을 볼 때, 교회의 비밀이 발표된 성경 말씀을 알고 사는 우리들의 삶과 연결시켜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 ‘두 번째’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새 언약
히브리서 8장 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뜻합니다. 이 말씀은 더 좋은 약속이 오기 전에 ‘먼저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것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약속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언약을 지켜 주신 분, 그분이 ‘중보’라는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그런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브리서 8:7)
첫 번째 것으로만 다 해결될 수 있었을 것 같으면 둘째 것이 왜 필요했겠느냐는 말입니다.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브리서 8:8)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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