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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 요나에게 두 번째 임한 하나님의 말씀

요나의 표적밖에는 5회
이 강연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2008년 4월 26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브리서 8:7)
요나에게 두 번째 임한 하나님의 말씀
요나서 2장 10절부터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 일 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 2:10-3:10)
요나서 2장 마지막 구절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0절) 는 말씀이 있습니다. 분명히 다시스로 가던 배에서 바다로 던져져 죽은 줄 알았던 요나가 니느웨에 와서 외쳤습니다. 요나를 통해 보여진 이러한 표적을 예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39-40) 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우리는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는 말씀에 대해서 예수의 죽음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분명히 시한부 죽음입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보낸 뒤 요나는 육지에 토해졌습니다. 물고기가 배설한 것이 아니라 토해낸 것입니다. 이것은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는 말씀처럼, 예수의 부활을 미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나가 육지로 돌아오게 된 것처럼 예수께서도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 15:54) 고, 생명이 사망을 삼켜 버렸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5) 는 내용으로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눅 24장 참조)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그분을 보았다고 해도 자기 손을 그분의 못 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요 20장 참조)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큰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40일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행 1:3 참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행 1:9 참조)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는 성령이 불의 혀같이 갈라져 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을 때 그들은 방언을 시작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내렸고, 그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사도행전을 처음부터 읽어 가다 보면, 사도들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 이튿날인 안식일에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예수가 살았을 때에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가고서는 예수가 살아났다고 말할 것이라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했습니다. (마 27:62-66 참조)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의 목소리가 초대 교회 시대를 장식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2:20) 고 발표했습니다. 신약 성경인 에베소서가 기록되던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구약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뒤였고, 그 구약 말씀 속에 숨겨져 있던 엄청난 비밀을 사도들은 신약 성경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이 교회에게 남겨진 말씀입니다. 요나서 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두 번 임한 것은 요나가 말을 듣지 않아 하나님께서 한 번 더 말씀하신 것에 불과한 일일까요?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자식에게, 부모가 ‘내가 한 번 더 이야기한다. 응?’ 하는 식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요나에게 노하셔서 요나를 물에 던져지게 했는데,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려고 두 번째 말씀하셨던 것입니까? 우리는 이 내용을 볼 때, 교회의 비밀이 발표된 성경 말씀을 알고 사는 우리들의 삶과 연결시켜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 ‘두 번째’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새 언약
히브리서 8장 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뜻합니다. 이 말씀은 더 좋은 약속이 오기 전에 ‘먼저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것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약속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언약을 지켜 주신 분, 그분이 ‘중보’라는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그런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브리서 8:7)
첫 번째 것으로만 다 해결될 수 있었을 것 같으면 둘째 것이 왜 필요했겠느냐는 말입니다.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브리서 8:8)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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