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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앙드리 | 마다가스카르
저는 가족 중에서 가장 어립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났을 때 48세로 이미 나이가 많으셨고 또 장애성 질환을 앓고 계셨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그분은 제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셨습니다. 저는 체구가 정말 작았기 때문에, 학교와 동네에서 자주 놀림을 받고 괴롭힘과 협박을 당했습니다. 조금 따돌림 당한 기분이었지요. 큰 형과 누나들은 자신들의 학업과 직장을 따라 섬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고,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저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아무도 없었지요. 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던 8살 때부터 종종 스스로 아침과 점심 식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제가 부모님과 형제들, 누나들이 필요했을 때 그들은 제 곁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보내준 돈과 옷은 제 삶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롭고 겁 많고 수줍음 많은 아이가 되었지요.
학교에서도 좀처럼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이었기에 대신 학업에 집중하였습니다. 저는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자습형 학생이라고 할까요? 제 자신의 노력에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제 기억에, 제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직업이 있으셨고 어머니도 일을 하셨으며, 제 의붓 누님도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 제 2공화국 시절 중반에 상황이 바뀌었고 그것은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형, 누나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저도 일용직 일을 해야 했습니다.그 시간 동안 제게 성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고 교회에 가라고 강요하는 이도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 삶에 확신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좇아 저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저는 학교 공부로 성공하자 자극을 받았고, 마음은 더욱 야망으로 채워졌습니다. 게다가 자존심도 강해져 반에서 2등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반에서 최고, 최우수 학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항상 제 속에 있었습니다. 고독하고 무시당하는 처지에, 확신도 없는 상태였지만 야망과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모두 부정적인 감정들이었지요.대학교에서의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그곳에 팽배해있던 엘리트 의식 때문에 학생들의 정신 상태는 좋지 않았고 그것은 제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도 개인주의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감정과 성격 위에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치열한 싸움에서 성공했고, 그것이 다 스스로의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했고 그분의 말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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