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를 읽어 보고, 도덕적으로 생각해 보면 요나는 잘못을 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음에도 그 말씀을 어기고 다른 곳으로 달려간 잘못을 행했습니다. 요나서 1장의 내용 속에 그 잘못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 중에 ‘요나가 내 말을 안 들었다.’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종과 동침하여 종의 아들을 낳은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네가 왜 그렇게 했느냐.’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십니다. 또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욥바에 내려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바다가 흉용했다는 내용은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 혼나 봐라.’ 하는 식의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39) 고 말씀하셨고, 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 8:58)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도덕적인 잣대로 계산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예수님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성경, 특히 구약 성경을 보면 그 속의 인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종했느냐 불순종했느냐에 따라 훗날 민족에게, 또 개인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해주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잘못을 물었던 사람은 아담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질타하시고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뱀의 후손과 맞서게 될 여인의 후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창 3장 참조 여인의 후손이라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역사가 흘러왔고 많은 사건이 있어왔습니다. 유대 민족의 역사 속에 태어나는 한 사람,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성경에 약속되었던 복이 많은 민족에게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성경의 기본적인 계획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구체화되고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요나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으신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삶 속에 있었던 사건들은 마치 그들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되었다기보다, 우리가 죄인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 미리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이루시는 과정을 우리에게 어렴풋이 보여 준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롬 5:19) 하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잘못했을 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 뱀에게 이르시되 ...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창 3:11-17) 라고, 우리가 믿는 성경 전체의 교리를 한 순간에 정리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정리해 놓으신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많은 내용들을 보면, 우리의 도덕적인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이 나옵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