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6.1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21회 마태복음 6:31-34, 누가복음 12:29-34 2001. 6. 9. 강연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31-34)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누가복음 12:29-34)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세상을 사는 동안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서로 인사를 하면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염려에는 염려해 주는 사람의 의무감이나 노력도 있습니다. 염려해서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는 동안,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누구든지 다 염려를 합니다. 지적 능력이 부족하거나 뭐가 무언지 잘 모르면 걱정 없이 살아가겠지만,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걱정이 많습니다. 머리가 아주 잘못되었거나 해서 문제가 생긴 사람은 걱정도 별로 없습니다.그런데 예수께서는 무조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일에든지 염려가 따릅니다. 예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상당히 많이 허용되어 있습니다. 염려를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사람의 자유입니다. 또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믿고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좋은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신 분의 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어떤 어려움에 빠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내 문제를 책임질 사람, 해결할 사람이 옆에 와서 ‘아, 그것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다 해결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인정할 때는 ‘아,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분이 나와 거리가 멀고 상관없는 분이라면 그 말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거짓말쟁이 같으면 믿지 않고 경계심이 더 강해지겠지만, 정직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성경을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누차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염려를 합니다. 내가 염려하고 있는 무게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분의 무게를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분에 대한 믿음 반, 내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내 힘 반, 두 주인을 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염려하는 것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31-32)   당시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순수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다른 민족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고 모두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이 ‘이방인’이라는 말은, 오늘날 신교나 구교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을 향해 이방인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적으로 유대인 아닌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우월감이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시며, 걱정, 염려 이 모든 것은 바로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타민족들이 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네가 유대인답지 않게 살지 않느냐. 하나님도 없는 백성들처럼 염려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말씀을 해 주시는 분을 거역하고 처리하는 데 앞장서서 이분을 버렸습니다. 요한복음의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11) 하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백성, 택하신 민족, 아브라함의 후예들에게 오랫동안 말씀해 오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쓰고 그 이스라엘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자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고 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모세의 글에, 시편에, 선지서에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쓰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기어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오랫동안 말씀해 오신 하나님 아들을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민족의 지도자 격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셨을 때, 그들은 ‘네가 도대체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처음이 언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예수께 도전하고 공격하는 당시 유대인들의 처음 조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요 8:25 참조) 또 어떤 논쟁 속에서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하자,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있느니라’고 했지 ‘있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있었다’면 옛날에 살다가 죽었다는 말인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8:57-58 참조)아브라함이 요단강 건너의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 아래쪽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는 고귀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는 멀리 멀리 떠나서 가나안 땅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12:7 참조) 그 후에 또 ‘네가 눈을 들어 동서남북 사방을 보라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창 13:14-15 참조) 줄곧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말씀하셨고, 그 아들 야곱에게 말씀하셨고, 그 아들 요셉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말씀이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처음 조상입니다. 유다 지파, 단 지파, 아셀 지파 하는 식으로 이스라엘에는 열두 지파가 있는데, 야곱의 열두 아들이 각 지파의 어른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며 역사를 이어 가셨는데, 모세 이후 1,400년 세월이 지난 후에 예수께서 오셔서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아브라함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이 염려하는 것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말씀해 오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그렇다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분을 보고, 또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만한 믿음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구약성경에는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 32:7)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실존하심을 말씀하신 성경을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셨구나. 나의 기댈 분이고, 나의 의뢰할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알아 왔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신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이 믿어져야 했습니다.우리 어린 시절이나 아기를 키워 본 경험을 생각해 봅시다. 아기가 혼자 놀다 탁 엎어지면 ‘으아’ 하고 울다가 가만히 두리번두리번 살핍니다. 아무도 없으면 저 혼자 일어나지만, 엄마 목소리나 아빠 목소리가 들리면 한 번 더 ‘으아’ 하고 웁니다. ‘내가 여기 있어요.’ 하는 소리입니다. 자신이 의뢰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울어도 대답이 없으면 하는 수 없이 자기가 털털 털고 일어납니다.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렸고, 구주가 오시면 어떻게 하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직접 오셔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을 때, 이 말씀을 알아들었다면 ‘그러면 그렇지. 그분이 하신 말씀인데.’ 하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때 이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덤덤했을 것입니다. 말이 힘차더라도 그 말을 의뢰하는 힘은 듣는 이의 믿음 여하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의지할 수 없습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바로 믿음과 믿음의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예수께서는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은 이 말씀이 물질적인 것들, 삶의 수단이 되는 것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을 보셨을 때 그들에게는 먼저 있어야 할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의식주 문제,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겠다고 하셔도 이 사람들은 그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이 말씀은 의식주에 대한 것으로, 물질적인 문제에 상당히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6장 5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에서,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기도할 때에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하시면서, 기도도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6장 31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은 생활의 문제이고, 6장 5절부터 8절까지는 기도 문제인데, 그 말씀들에서 이방인과 같이 행동하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두 곳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6장 31절부터 34절까지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그 다음 6장 5절부터 8절까지 보겠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무엇을 부탁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먼저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31절 내용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것에 대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직접적인 생활에 필요한 문제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