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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1999. 1. 2 강연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1-11)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말씀     세상에 성경보다 더 나은 책은 없습니다. 우리는 귀하고 귀한 이 성경을 읽을 때, ‘주님, 그때 사도들을 움직이셔서 교회를 시작하셨던 주님의 성령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함께 계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는 마음과 ‘이 거룩한 말씀을 우리가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철저하게 알게 해 주십시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보석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석에 관한 책을 읽은 후에는 ‘아, 나도 눈이 밝을 때 보석을 감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 속을 돌아다니다가 진짜 큰 원석을 주워 놓고도 ‘색깔 곱다’ 하고 던져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보석을 감정하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확대경을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보석을 보면 꺼내어 들여다보면서 그것의 가치를 측정합니다. 그들은 돌 하나를 보면서도 철저하게 살피는데, 이 귀하고 귀한 말씀을 대할 때 그냥 아무렇게나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이 지혜는 그저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성경에 감추어진 엄청난 과학적 비밀들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만, 성경에는 무심코 읽으면 그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심상히 넘어갈 수밖에 없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평상에 누워 밤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보면서 ‘별 하나 나 하나…’ 하고 노래를 불렀던 추억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는 북두칠성 자리가 어디고, 오리온 자리는 어디인지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과학이 발달된 지금, 사람들은 그러한 별들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치밀하게 연구합니다. 별을 넘고 또 그 별을 넘어 저 멀리까지 내다보는 고성능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어떤 별은 지구를 향해서 몇 년 후에 온다고 계산하기도 하는 등, 별의 움직임을 다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천문학자가 별을 조사하다가 북극 쪽을 보았는데, 별이 없는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다른 부분에 비해 현격하게 별의 수가 적어 마치 빈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공간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3500년 전에 욥이라는 사람이 그 사실을 미리 언급한 기록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기 26:7)       그 옛날에, 지금 과학자들이 고성능 망원경으로도 발견하기 어려웠던 사실을 욥이 발표했습니다. 다른 별들의 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그 큰 빈 공간이 북편 하늘에 있다는 것을 욥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담기지 않는 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태양계가 하나밖에 없는 줄로 생각했습니다만, 과학에 의해서 태양계와 유사한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사람들은 이 우주가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질서정연한 우주가 저절로 된 것이겠습니까?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이가 아버지에게 “저 배는 누가 만들었어요?” 하고 물었는데,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저절로 되었단다.” 또 자동차가 옆으로 쌩 지나가자 “저것은 어느 회사에서 만든 거예요?”라고 물어도, “저절로 되었단다.” 고공에 비행기가 한 대 날아가자 “저것은 어떻게 날아 온 거예요?” 물어도, “저절로 하늘에서 내려왔단다.” 이렇게 대답한다면 그 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대단한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참된 지혜를 부여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이 성경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보배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일하셨던 예수님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여기 맨 처음에 ‘데오빌로여’라는 호칭이 나옵니다. 누가복음에는 ‘데오빌로 각하’라고 했는데 이제 이 사도행전에서는 ‘데오빌로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호칭은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각하’라는 말에서와는 달리 친근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데오빌로의 직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각하라는 말이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만 붙이는 말인 것으로 미루어 이 사람이 대단한 인물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와 이제 ‘각하’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만큼 친숙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말한 누가는 열두 사도 중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을 깨달은 이후에 사도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누가복음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말했을 때, 그는 ‘우리’ 가운데 포함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열두 사도로 뽑힌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주님의 형제가 되는 위대한 약속에 동참한,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의해서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우리’입니다. 아무렇게나 가볍게 말하는 ‘우리’가 아닙니다.     이 ‘우리’는 어떤 신학 이론이나 사람의 생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성경을 확실히 믿고 깨달아야만 이 ‘우리 중에’라는 말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내적인 성령의 경험이 있고서 이 ‘우리’ 중에 참예하게 될 때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하신 예수님의 새 계명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무심코 ‘우리 중에’라는 말씀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누가가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께서 이 땅 위에 탄생하시기 전, 태초부터 시작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일, 이 땅 위에 인간의 몸을 쓰고 탄생하시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모든 일, 그의 말씀하신 그대로 못 박혀 죽으시고 말씀대로 살아나셔서 부활 승천하신 이 모든 일을 말합니다. 누가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된 이 사실을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라고 간략하게 기록했지만, 이것은 성경 전반을 흐르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예수님의 행적입니다. ‘우리’는 그 원대한 계획 속에 들어 있는 ‘우리’이지 보통 우리가 쓰는 말의 ‘우리’가 아닙니다.     또 ‘말씀의 목격자’라고 했는데, 말씀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하셨고, 그의 몸에서 태어날 씨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쓰고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유대 역사 속에서 선지자들이 철저하게 가르치고 계속 설명해 왔는데 어느 날 그분께서 인간의 몸을 쓰고 탄생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분에 대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것은 구약에 예언한 모든 말씀대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씀이신 예수님의 곁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사도들의 소리를 누가가 곁에서 듣고서, 그들을 ‘말씀의 목격자’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각하’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세상적인 지위가 있는 데오빌로에게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고 누가복음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보다 먼저 기록된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행적과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위해서 준비되었던 인적 배경들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행하심보다 세례 요한의 탄생을 먼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나타나야 될 선지자 세례 요한의 집안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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