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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10월 28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로마서 15:16)
이방인을 제물로 바치는 복음의 제사장
로마서 15장 14절부터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5:14-21)
어떻게 보면 평범한 것 같은 이 내용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에서 우리는 특별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희생되었던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시고, 또 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힘썼는지가 위의 내용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로마서 (5:14)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다정하게 ‘내 형제들아’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친형제가 아닌 사람에게 ‘내 형제’라는 말을 쓸 정도의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같은 피를 받아 태어난 형제라도 마음이 맞지 않을 때는 ‘저것이 진짜 내 형제인가. 어디서 주워 온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속상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기서 ‘내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다정다감한 모습입니다. 또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라고 되어 있는데, 다른 성경 번역 중에는 “너희에 관하여 내 스스로 확신하기로는 너희도 선으로 충만하고”라고 된 것도 있습니다.*  (* 한글 킹제임스 성경 “나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 관하여 내 스스로 확신하기로는 너희도 선으로 충만하고 모든 지식으로 가득 차서 서로를 권고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니라” (로마서 5:14)) 번역 차이가 있지만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함이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지식이 차서”, 이 말씀은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서로 헐뜯고 서로 나쁜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기에 그 그리스도인들은 성장해 있었고 성숙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서로 얼마나 가깝고 교제가 잘 되었기에 그들에 대해 ‘확신한다’는 이야기까지 했을까 생각하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로마서 15:15
앞서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가르치고 교제가 있고 서로 권면하며 참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좋게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15절에서는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이 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무언가 중요한 것, 무언가 더 나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이를 더욱 담대히 썼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서 14절 말씀과 같은 칭찬을 받았던 사람들도 다 같은 은혜를 받았을 텐데, 스스로 권면하고 스스로 잘 가르치고 잘 돌보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에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모든 지식에 차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개개인이 다 지식에 차 있다는 말씀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만, 이 말씀은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고 참된 교제를 가질 때 정상적인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럴 때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지식’이 함께 움직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이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고, 확신한다는 자기 입장을 밝혔습니다.그런데 15절에서는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라고 했습니다. 그런 좋은 교제, 좋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바울이 보기에 무언가 그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할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너희와 내가 함께 받은 은혜를 인하여’가 아닙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보편적으로 받은 하나님의 은혜, 즉 죄사함 받고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은 그 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교인들과 구별된 입장에서 바울 자신이 자부할 수 있는 “내게 주신 은혜”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가르치고 돌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음식도 시간이 지나고 온도가 맞지 않으면 빨리 쉬어 버립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람들에게 더 진취적인 것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좋지만 한 번 더, 사도의 입장에서 볼 때 너희가 다시 생각해야 될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라고 말한 것은 바울 스스로 사도의 입장에서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안 이후에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과 자기 행동과 또 살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통해 로마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쳐 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이 서로 권하고 모든 지식으로 가르치고 잘 돌보며 지내는 것을 참 좋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 자신이 주님의 복음을 안 후에 살아온 삶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안전하게 사는 사람과는 다른 군사다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일꾼다운 무언가를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라는 말씀에서 ‘내게 주신 은혜’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라고 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다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서로 돌보고 서로 사랑하다 보면 자칫 육신적으로 흘러가 버릴 수 있습니다. 서로 친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다 보면 너무 좋아하다가 근본 목적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등한히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란 서로 성도들을 돌보는 것도 있겠지만, 외부를 돌아보면 바깥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싸움에 있어서 방파제나 성벽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로마서 5:16)
여기 “이 은혜는” 15절에서 말한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인하여 담대히 썼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성도들도 이해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만,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은혜에 대하여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같은 일꾼이기는 합니다만, 이 말씀이 처음 기록될 때 바울은 자기의 신분과 위치를 확실하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삶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누구의 일꾼입니까? 영혼은 하나님의 일꾼,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묻는다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는 소리가 자신 있게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행했던 모든 수고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냉정하게 따지면 떳떳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 내가 그리스도의 일꾼답게 살지 못 하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꾼은 주인의 일과 활동에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 일꾼입니다.
로마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착실하게 살기는 했지만,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무언가 조금 약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의 일꾼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일꾼으로서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해 주면, 다른 영혼들이 ‘아, 이제는 내가 내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내 영혼을 사셨구나.’ 하는 것을 압니다. 자신이 죄사함 받은 것을 알 때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바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에 인도자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백성들, 유대인 아닌 이방인들을 설득하고 가르쳐서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리는 복음의 제사장직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의 제단 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직무를 가진 자신의 위치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16)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이방인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방인은 거짓으로나 적당하게 믿는 것이 아니고 확실한 믿음으로 선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확실하게 깨끗이 바쳐진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사도 바울이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세상에 현존하는 기독교와 모든 교회가 담당하고 있는 이 일은 과연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바쳐진 제물입니까?
십자가를 보고 지금 모든 것을 주의 제단 위에 온전히 바치네 주께서 그 값을 이미 주셨으니 받으신 제물은 그 불에 타겠네주께서 보내신 사랑의 불길이 사랑의 불길이 내 맘에 일도다 성신이 오셨네 영광을 돌리세  (합동찬송가 4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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