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성경 말씀이 이 세상의 모든 책들과 구별되듯이, 모든 인간과 예수라는 분은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고 살아 있으며, 우리가 읽을수록, 또 교제를 해서 알아갈수록 점점 더 그 내용이 깊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딤후 3:16) 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많은 책들과 성경 사이의 차이점입니다. 이러한 차이가 존재하듯이, 모든 인간과 예수라고 하는 분 사이에도 분명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의 몸속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피는 우리의 피와 색깔도 모양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피에는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육체의 생명이 있고 예수의 피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피가 십자가 산상에서 흘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보시고, 그 피를 통해서 우리 인간을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날 하루로 인해 모든 죄악이 끝이 났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발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우리는 앞서 느부갓네살 왕이 꿈꾼 한 신상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정금으로 된 우상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얼마의 철과 흙으로 된 발끝까지 설명하고, 뜨인 돌이 그 신상의 발을 쳐서 부서져 신상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는 내용입니다.그러한 내용에서 나 스스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죄를 안은 그 육체를 통해 자식들이 태어났고, 수천 년이 지나 나도 그 후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나의 모습은 어떨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역사를 한 우상으로 설명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를 살아 있는 한 인격체로서 보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나는 어떠할까요? 태어난 그대로의 내 모습과 성경이 소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 차이를 한번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와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구약 속에 나타나 있는 많은 내용들이 그 속에서 나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나를 교훈하기 위해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서, 하나님께 부와 명예와 지혜를 받고 성전을 짓기도 하고 사람들을 판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살아간 다윗의 모습과 함께 솔로몬은, 고난 받으시고 후에 영광중에 심판주로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솔로몬도 인간이기에 실패를 합니다. 이방 여인들을 가까이하여 아내로 맞아들이고 산당을 짓고 그들의 우상 신을 섬겼습니다. 바로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는 동안에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성향이 솔로몬 속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벌을 받고 징계를 받는 근본에는 이 민족이 우상을 섬긴 것에 대한 질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와 남자를 짓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창 1:28) 고 하셨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순리에서 이탈되어 역행하는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셨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신 기본적인 명령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본적인 법에서 이탈되고 성적인 부분에서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인간 사회에 팽배했을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를 살피다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신들을 섬긴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간음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호세아 9:10)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더러워졌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선지서나 에스겔 36장, 호세아서 앞부분부터 읽어보면 이러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선지자들의 글들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모시고 우상을 숭배하고 거기에 절하고 분향한 사실에 대해, 이스라엘 민족이 간음을 행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기록된 곳이 많습니다.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명령하신 때부터 그 속을 살피시던 하나님께서는 아주 긴 역사를 통해 우리 인간이 간음하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17:9-10)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의 모습과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한꺼번에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또 이 세상에 거창한 제국으로 일어났지만, 죽은 우상의 모습과 같았던 이방 제국들의 모습도 다니엘을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2천 년 전 어느 날 이 세상에 한 육체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는 것은 평범한 사건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는 말씀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내용은 전설이나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 같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이 범죄한 뒤 태어난 자손들 속에서 일어나는 죄성을 그대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자손들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여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그들을 통해 성경 말씀을 기록케 하시어 우리를 교훈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받은 민족들조차도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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