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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 2011년, 역사 속 뮌헨을 가다

  편집부 제36회 유럽 성경탐구모임이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독일의 뮌헨에서 열린다. 독일 남동부 지방의 바이에른 주의 주도인 뮌헨은 베를린, 함부르크에 이어 제3대 도시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많은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찾을 정도로 뮌헨은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볼거리를 지니고 있고 경제, 문화적으로도 발전한 도시이다.  독일 형제자매들의 교제 속에서 성경탐구모임이 준비되고 있는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뮌헨이라는 도시를 낳은 바이에른 주(州)‘독일 위에 바이에른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바이에른 주 사람들의 강한 문화적 자부심을 빗댄 말이다. 그들의 이러한 자부심은 ‘독일 속의 또 다른 독일’ 바이에른을 만들었다. 바이에른 주는 독일 연방 공화국의 16개 연방주 중 면적이 가장 커서, 독일 전체 국토의 거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기원전에 들어온 게르만 부족 바바리족(Bavarii)이 바이에른이라는 지명의 기원이다. 바이에른 왕국이 시작된 것은 1180년에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가 이 지역을 비텔스바흐 가의 오토 백작에게 증여하면서부터였다. 바이에른 왕국은 1871년 1월 독일 제국에 가맹하였다가,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군주 루트비히 3세가 퇴위 당한 후, 최초의 독일 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비텔스바흐 왕족 중 1864년부터 1886년까지 바이에른 왕국을 통치한 루트비히 2세에 대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술과 문학과 건축에 관심이 많았고, 혼자 공상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18세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 그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때마다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에서 멀어져 개인적인 일에 열중하게 되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린더호프 성, 헤렌힘제 궁전 등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성들이 그의 환상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성들을 짓기 위해 그는 돈을 물 쓰듯 했고, 국고가 바닥 나자 적국에서까지 빚을 끌어다 썼다. 개인적인 건축 빚으로 바이에른 왕국이 파산할 위험에 처하자 대신들은 비밀회의를 열어 왕의 폐위를 결정했다. 유배된 지 이틀 뒤, 왕은 허리 높이도 안 되는 얕은 호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며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국고를 거덜낼 정도로 무리하게 지어졌던 성들이 현재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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