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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10월 7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로마서 14:7-8)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로마서 14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아니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12절)   우리는 이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외하고 신앙을 논할 때가 많습니다. 잘 믿는 체 하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의 믿음을 비판하면서 자기가 믿는 것만 옳다고 주장하며 세월을 보내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로마서 14장에서 사도 바울이 한 이야기들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았기에 이런 말이 주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로마서 14:1)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비판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또 “믿음이 연약한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믿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한 믿음, 죄로 인해 버림받았던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믿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하신 믿음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생활 가운데서 문제가 되는 내용입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생활 가운데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그 생활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과 관계된 내용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구별해 가며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장이 멈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은 있지만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가정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성도 아버지의 성을 받았고 피도 그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그 집의 아들이고, 그 집의 딸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짧은 아주머니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너는 어느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단다.’ 하는 농담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날부터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어머니가 진짜 제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슬펐는지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깨었습니다. 또 어떤 꿈에서는 제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가 아니어서 진짜 어머니를 찾으러 다녔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어린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자라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들었습니다. 확실히 그 집안 자녀이고 그 집의 대를 이을 사람인데도, 어떤 말에 의해 의심이 생겼을 때는 그 집안에 대한 신뢰가 사라집니다. 의뢰하는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믿음이 연약한 자”,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신앙생활에 더 이상 진전이 없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자랑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위해 확실하게 살지도 못하면서, 성도들의 교제에 신뢰를 떨어뜨리고 다른 영혼을 무너지게 합니다. 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은 지 10년이나 되었는데 아직까지 뭐가 뭔지 잘 몰라요.’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처음 구원받았을 때는 기뻤고 반갑고 즐거웠는데 지금은 답답함만 마음에 가득 찼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다는 것은 구원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 믿음의 생활에서 뒤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로마서가 기록될 당시, 초대 로마 교회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 사이에 먹고 지내는 문제로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하는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당시 유대인으로서 믿은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따라 행하라고 가르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행 15:5 참조) 그때 사도들은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행 15:10 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게 할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전하면 좋을 것들에 대해 따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사도행전 15:19-20)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그 시대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에 시장에서 파는 음식들 중에 상당수는 고기 종류였습니다. 고기를 먹고 산다는 것은 부유층에 속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죽은 이들이 귀신으로 세상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여 무엇을 부탁하기 위해서 제사를 많이 지냈습니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릴 고기가 흔했습니다. 제사들은 국가적인 행사였고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에 쓰인 고기들이 시중에 많이 유통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고기를 사서 먹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 ‘제사상에 나온 우상의 음식을 함부로 먹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음식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아니냐. 귀신이 따로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을 다 감사하고 먹으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귀신 앞에 놓고 절한 그 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채소만 먹겠다.’ 하기도 했습니다.예전에 제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농촌에 전도하러 갔을 때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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