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4
이 강연은 2010년 제42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중 7월 26일 저녁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5:44)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성경 속 두 번 반복되는 내용들앞선 강연에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라는 내용에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강조했던 부분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모르던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문득 ‘나도 교회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을, “너희를 불러”라는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불러”라고 했을 때, 그 부르심을 받은 대상은 분명합니다. 크게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각자 개개인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사실이 있기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제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 구절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 사이에 중보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발표하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우리를 불렀고 우리와 교제하시는 것입니다.우리가 그분과 교제한다는 말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 중에 잡힌 한 여인이 예수님 앞으로 끌려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여인을 데리고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를,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사람을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이야기하겠습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그때 예수님은 몸을 한 번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는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십니다. 이것은 ‘너희 중에는 칠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농담을 하실 분은 아니니 그냥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한 번 더 굽히고 쓰셨을 때 사람들은 다 떠나갔습니다. 그 여자 앞에는 예수님 혼자 남으셨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같은 행동을 보이십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돌을 들고 이 여인을 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죄가 전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용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두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돌로 치라’고 하는 정죄의 말씀, 그리고 후에는 ‘용서한다’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내어 줌’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우리 범죄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어 주셨고, 그 다음에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그분이 살아나셨습니다. 로마서 4장은 그 두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를 불렀다”는 그 부르심 속에는 예수님의 죽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 부르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피를 가진 육체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던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과 교제를 합니다. 바로 한 번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교제의 머리가 되신 그분입니다. 그분은 지금 그 몸속에 피를 가지고 있지 않으십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와의 교제 속으로 “너희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는 말씀 속에는 ‘너희’와 ‘우리’가 분명히 있고, ‘불렀다’와 ‘교제한다’는 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인간 몸속의 피와 대사 체계, 신경전달 체계 역시 두 가지로 이루어져있음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런 두 가지 모습에 대한 내용들이 자주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을 받아 내려왔을 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모습을 보고는 그 돌판을 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시내 산에 올라가서 두 번째 돌판을 받아서 내려옵니다.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을 깎아 친히 그 손으로 쓰신 것이었는데, 깨버렸습니다. 두 번째 돌판은 모세가 깎았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깎아서 써 주신 것을 모세가 왜 깨어버렸을까, 아깝다.’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언약이 아닌 두 번째 언약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언약을 세우는 사실을 설명하시기 위해 역사 속에 그 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던 때에 그들 속에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명령을 받은 대로 성막을 만들었고 레위 지파가 그것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다윗 왕 때에는 성전을 짓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나무와 금, 그 밖의 많은 물건들로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분명 성막이 나타났음에도 결국은 성전이 건축된 것입니다. 먼저는 장막이 있었고 그 후에는 성전입니다.또 유다 지파로써 이스라엘 국가의 왕으로 나타난 이는 다윗 왕과 솔로몬 왕 두 명 뿐입니다. 사울 왕도 있었지만 그는 예고된 왕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유다에 대해 예언한 대로 다윗은 유다 지파에서 왕으로 태어났습니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 후에는 이스라엘 국가가 분열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두 명의 왕을 거치게 되었을까요? 왜 두 번일까요?시편이나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다윗 왕이 예수님의 그림자로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체로, 그 몸속에 피를 지니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전혀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순종하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해서 영광중에 나타나셨습니다. 같은 분이지만 고난 받는 모습이 있고, 또 영광중에 오시는 모습이 있습니다. 모습이 서로 다릅니다. 그 두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 다윗 왕과 솔로몬 왕, 두 왕이 동원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는 두 번 나타나는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라는 말씀대로, 성경 속에 나타나는 모든 내용과 그 비밀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성경 속에서 어떤 것이든 두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두 번째 아담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이 ‘한 사람’은 하나님의 손의 의해 처음 만들어진 아담입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3-14)
“오실 자”는 첫 번째 아담 대신에 이 세상에 나타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로마서 5:15-17)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 고 명령하셨는데, 아담에게서 취한 갈빗대로 창조된 하와가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이 죽은 것입니다. 사망이 모든 사람의 왕 노릇 하는 가운데서 사람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한 사람 아담을 통해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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