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9월 16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 8:7)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9-21)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은 십계명보다 더 실천하기 힘든 내용 같습니다. 십계명은 사람이 몸으로 노력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십계명을 기준으로 선하게 살려고 상당히 노력합니다. 십계명이 하나의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2장 9절부터 21절까지의 내용은 아주 쉬운 듯하지만, 참 지키기 힘든 내용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렇게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원수를 먹여 본 적이 있으십니까?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 했는데, 원수가 주리는데 어떻게 먹입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살인을 하지 않으면 되지만,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는 말씀은 따를 자신이 없습니다. 누가 제게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저는 모기라고 대답합니다. 남의 피를 빨아먹고, 밤새 잠도 못 자게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미워하는 것은 파리입니다. 어디 앉았는지 모르는 발로 밥상을 밟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하자면 제일 미워하는 것은 마귀겠지만 마귀는 미워하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모기를 미워할 수 있는 그 미움을 마귀가 이용하면 사람이든 형제든 다 미워할 수 있게 됩니다. 모기는 사람의 피부나 건드리고 피를 빨아 먹지만, 마귀는 내가 하나님의 일에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그런데 여기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라는 말씀은 ‘사랑은 위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거짓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위장되어서도 안 되고, 표리부동해서도 안 됩니다. 또 악을 미워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미워하지 말라, 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악을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는 쉽게 친해지고, 쉽게 교제를 가집니다. 자기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사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대해 ‘저 사람 참 매너가 좋네. 그러니 내가 쉽게 친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전부 자기 기준에 맞추는 것입니다. 또 남녀 간의 사랑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서로 생각이 맞으면 서로 좋아합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감정이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사랑엔 거짓이 없나니”라는 말씀에서 말하는 ‘사랑’은 흔히 말하는 쓰다 버리는 사랑, 배신 당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참으로 깨끗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경에 사랑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전서 13:1) ‘언어에 능통하여 여러 나라의 말들을 할 수 있고, 또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말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곱고 깨끗하고 순진하고 청순한 것, 좋은 것들을 다 합한 것이라야 천사의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말을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매끄럽고 좋은 말이라고 해도 사랑이 빠졌다면 그것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라고 했습니다. 좋고 귀한 그 어떤 말이라도 거기에 사랑이 들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울리는 소리일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린도전서 13:2)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다’는 것은, 모든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최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아주 정석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사랑을 빼고서는, 사랑을 논하지 않고서는 종교인으로서 완전해 보여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3)
이 말을 기록한 사도 바울의 삶은 확실했습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산 사람도 세상에 흔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행동은 어떠했습니까?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행 20:34-35) 라고 말했고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살전 2:8) 고도 했습니다. 자기가 번 돈의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썼다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일생의 자랑이었습니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이 행동은,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가치있는 삶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것을 다 바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일이 사랑 없이 할 수 있겠는가?’라며 그러한 행동과 표현을 보면서 사랑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서 사랑이 없어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보는 기준으로는 자기 재산을 털어 남을 도와줄 줄 알고, 자기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 데 바칠 정도라 하면 만점짜리 인간이겠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했을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이것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없이도 고린도전서 13장 1절부터 3절에서 말하는 외부로 드러나는 모든 표현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좋은 행동들은 기독교 역사 속에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서 일어나는 동정심이라든지, 인간 사이의 사랑, 남녀 사이의 사랑, 애정이나 우정 같은 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사랑에 속하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이 사랑은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을 사랑하고, 선한 말을 하고, 천사의 말도 하고,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어떤 한 사랑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음속 깊숙이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절부터 3절까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렇게 선하고 깨끗하게, 인간으로서 잘 살았고 참 멋있게 살았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이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도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정도로 남을 위해 희생할 수는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 구제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한 행동에는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한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구약 성경 아가서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가서는 자칫 잘못 생각하면 남녀간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사랑만 논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젊은 두 남녀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 8:6-7)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여호와의 불’ 같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불’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사르는 힘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차원이 높은 사랑입니다. 6절에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녀가 사랑을 할 때, 이 구절을 흉내만 내더라도 그 사랑은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죽음같이 강한 사랑이라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7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 사랑”에 표시를 하기 바랍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모든 인간의 사랑을 다 합해도 ‘이 사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온 가산이나 물질을 다 주고 그 사랑과 바꾸려 한다 해도 멸시를 받을 뿐이라고 했습니다.이런 기준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이 쉽게 보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한 사람이 예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내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예수께서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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