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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 엑소더스 13회

레온 유리스     3편  주먹에는 주먹으로     “...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애굽기 21:23-25)       10장     프레디 칼드웰 소령이 복수 때문에 살해된 사건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복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마카비의 행동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영국 국민들은 이러한 불안한 정세 전반에 대해 염증을 느껴 팔레스타인 위탁통치령을 포기하라고 노동당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팔레스타인에 주둔한 영국군은 프레드 칼드웰 살해 사건에 대해 격분하면서도 깊은 수심에 잠겼다.     칼드웰의 시체가 덩 성문에서 발견된 이틀 후, 아야라라는 마카비 소녀가 심한 매질로 내출혈을 일으켜 사망했다. 포로 소녀가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금방 퍼졌다. 마카비는 격분했다. 뒤를 이어 분노의 불길에 휩싸인 복수의 두 주일이 시작되었다. 예루살렘 전체 지역이 테러리스트의 습격으로 흔들렸다. 이러한 일련의 습격은 백주에 CID 본부를 습격한 사건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이 두 주 동안 가장 용맹스럽게 싸운 사람은 바로 도브 란도우였다. 그의 과감한 행동은 모든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지옥의 두 주 동안 ‘작은 기오라’의 전설이 생겨났고, 도브의 이름은 무모한 용맹을 의미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숨을 죽이고 다음 번 타격을 기다렸다. 아놀드 헤이븐 하스트 대장은 일련의 습격 사건에 대해 넋을 잃고 있었으나 곧 이어 계엄령을 선포하고, 통행 제한, 수색, 기습, 심지어는 사형 집행이라는 수단까지 동원해 이슈브에 보복했다. 그 때문에 산업과 상업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 그의 ‘낙지’ 작전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휩쓸었다.     칼드웰 살해 사건, 지옥의 2주일, CID 본부의 습격은 영국의 권위에 대한 노골적인 야유였다. 마카비의 폭발 한 편에서는 알리야 벳이 또 밀항선 세 척을 팔레스타인 해역으로 끌어들였다. 불법 이민 수송은 테러보다 화려한 활동은 아니라도, 파괴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 있어서 테러리스트의 활동과 다를 바 없었다. 영국군은 언제 어느 때 복병의 공격이 있을지 몰라 긴장 속에서 유대인 도시의 거리 곳곳을 순찰했다.     UN 사령관이 곧 도착하기로 했다. 헤이븐 하스트는 사절단이 오기 전에 이슈브의 기능을 파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반유대적 행동을 하는 장교와 병사들의 명단을 물색했다. 그는 직접 명단을 심사해서 가장 독종으로 알려진 여섯 명을 선발했다. 장교 둘과 병사 넷이었다. 이 여섯 명은 슈넬러 병영 안에 있는 그의 거처로 소환되어 극비 임무를 받았다. 음모는 5일간에 걸쳐 철저히 계획되었다. 6일째 되는 날, 헤이븐 하스트는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다. 여섯 사람의 장병은 아랍인으로 변장했다. 그 중 두 사람이 다이너마이트 2톤을 실은 트럭을 운전해서 킹 조지 대로를 내려갔다. 트럭은 시온 이민협회를 향해서 달리다가 협회 정문으로 가는 긴 차도를 마주보는 곳에서 멈추었다. 협회 건물과 대각선을 긋는 거리였다. 아랍식 옷차림을 한 운전수는 핸들을 고정시켜 놓은 다음 기어를 넣고 슬롯을 열었다. 두 사람은 트럭에서 뛰어내려 종적을 감추었다.     트럭은 불쑥 앞으로 나가더니 열려있는 대문을 지나 차도 위를 굴러갔다. 차는 한순간 방향을 바꾸는 듯 하더니 커브를 삐딱하게 넘어서서 건물 정문 바로 옆을 들이받았다.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건물은 폭파되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두 구역 떨어진 곳에서도 다른 두 사나이가 역시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트럭을 이용해 똑같은 방법으로 이슈브 중앙협의회의 다른 건물을 폭파하려고 했다. 때마침 회의 중이라 이슈브 지도층들의 대부분이 그 건물 안에 있었다. 트럭은 이 건물을 향해서 빠르게 내달렸다. 마지막 순간에 트럭은 차도 끝의 턱을 넘어서야 했다. 그러나 트럭은 턱을 넘어서는 순간 방향이 바뀌어서 목표 건물 옆의 아파트 한 채를 폭파하고 말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일을 끝내고 도망 온 네 사람을 도피용 차에 싣고 트랜스요르단으로 달렸다. 트랜스요르단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였다.     이슈브 중앙협의회에서는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온 이민협회에서는 백 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희생자 가운데는 84세의 해리엇 살즈만 여사도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자 곧바로 하가나와 마카비의 정보 요원들은 범인을 찾아 팔레스타인 전토를 이 잡듯 조사하기 시작했다. 양쪽의 정보 조직은 그날 안으로 여섯 명의 아랍인이 영국군 병사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자가 아놀드 헤이븐 하스트라는 것도 알아냈다.     헤이븐 하스트의 필사적인 도박은 이슈브 지도층을 말살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 유대인은 전에 없이 일치단결했고 두 개의 군사 조직이었던 하가나와 마카비는 서로 손을 잡기에 이르렀다. 하가나에서는 <헤이븐 하스트 보고서>의 사본 한 통을 입수했다. 그들은 헤이븐 하스트 대장이 유대인 몰살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가나와 마카비는 공동 작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폭발 사건이 있은 2주일 후, 영국측은 시온 이민협회의 건물을 폭파하고 이슈브 중앙협의회 건물의 폭파를 기도한 대가를 받았다. 하가나는 하룻밤 사이에 철조망을 완전히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으로 드나드는 일체의 철도 운수 기능을 마비시킨 것이다. 그리고 모술 송유관 15개소를 파괴했다. 그 이튿날 마카비는 지중해 제국의 영국 대사관과 영사관 6개소를 습격해서 알리야 벳과의 싸움에 사용되는 모든 기록 문서를 불살라 버렸다.     이러한 일이 끝난 후, 마카비는 최종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대장 아놀드 헤이븐 하스트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마카비는 슈넬러 병영 내를 하루 24시간 내내 지켜보았다. 그들은 병영 내로 출입하는 상황을 기록하고 승용차와 트럭의 이동 상태를 하나하나 다 포착하고 병영 구내의 지도를 작성했다. 막상 지도를 작성해보니 헤이븐 하스트를 제거하고자 했던 계획은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영국인이 아니고서는 수천 명이 지키고 있는 요새 한복판을 뚫고 들어가 그를 만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빈틈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가량 밤중과 새벽 한 시 사이에 슈넬러 병영을 떠났다가 날이 새기 직전에 돌아오는 민간 승용차 한 대를 발견한 것이다. 그 사실은 마카비 대원들이 만들고 있는 기록에서 드러났다. 차 안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운전수가 한 사람 있을 뿐이었다. 마카비 대원들이 차를 등록한 사람의 이름을 조사해 보았다. 부유한 아랍인 집안이 하나 나타났다. 마카비는 그 차의 주인이 아랍 편에서 영국 측과 협력하는 어떤 자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차를 이용해 헤이븐 하스트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아놀드 헤이븐 하스트의 신원, 행동, 습성에 관한 보고서가 정리되어 철저히 검토되고 있었다. 마카비는 그가 정략 결혼을 한 야심가라는 것도 알아냈다. 그러나 그는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번 다른 여자들을 만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차 주인을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이 아랍인 지주의 집안에는 용모, 교양, 경력으로 보아 헤이븐 하스트같은 사람이 매력을 느낄 만한 젊은 여자 한 사람이 있었다. 수수께끼의 조각조각들이 한데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마카비 대원들은 이 아랍인의 집을 항상 지켜보며 문제의 여인 뒤를 줄곧 미행했다. 뒤를 밟기 시작한지 이틀째 되던 날 밤, 그들의 꾸준한 노력이 열매를 맺었다. 여자는 한밤중에 집을 나와 예루살렘의 부유한 아랍인들이 사는 엘 바크 구역의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도착한 30분 후 수수께끼의 차가 와 닿았다. 마카비 대원들은, 뒷자리에서 나와 약속 장소로 달려 들어가는 아놀드 헤이븐 하스트 대장의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날 새벽 세 시, 헤이븐 하스트는 어둠 속에서 소름끼치는 음성에 잠을 깼다.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는 주에게 영광 있으라!”     그는 잠자리에서 뛰어내렸다. 마카비의 총탄이 방 안을 온통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날이 밝자 영국군 사령부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사령관의 시체가 있는 곳을 알리는 전화였다. 아놀드 헤이븐 하스트의 시체를 사진으로 잘 찍어 놓았는데 영국 측에서 쓸데없이 보복 행위를 할 때는 그 사진을 공개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영국군 사령부에서는 영국군의 장성 한 사람이 아랍인 정부와 동침하는 자리에서 피살된 추문이 던지는 효과를 계산해 보았다. 그들은 헤이븐 하스트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사건 전체를 덮어두기로 작정했다.     그가 제거되자 테러리스트들의 활동도 완화되었다.       1947년 6월 말, UN 팔레스타인 특별위원단이 하이파에 도착했다. 스웨덴, 네덜란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과테말라, 우루과이, 페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이란 및 인도 등 중립국가의 대표들로 구성된 위원단이었다.     유대인은 불합리한 입장에 있었다. 특별위원단에 소속된 국가 중에 이란은 회교 국가였고, 인도는 부분적으로 회교 국가인데다가 또 영연방의 일원이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도 영연방 국가였다. 소비에트 블록의 체코와 유고는 전통적으로 반유대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남미의 우루과이, 페루, 과테말라는 가톨릭의 세력이 지배적인 나라들인 만큼 시온주의에 대한 바티칸의 미온적 태도에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완전히 공정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국가는 스웨덴과 네덜란드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슈브는 이 특별위원단을 환영했고, 아랍 측에서는 UN의 개입을 반대했다. 아랍측은 총파업을 일으키고 시위를 했다. 이슈브는 다시 한 번 노령의 전사이며 협상자인 바락 벤 카난의 힘을 빌었다. 바락은 벤 구리온과 와이즈만 박사 두 사람과 함께 특별위원단의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11장     키티와 카렌은 간 다프나로 돌아왔다. 키티는 카렌 앞에서 말을 꺼낼 시기를 기다렸다. 키티는 도브 란도우에게서 편지가 왔을 때 더 이상 뜸을 들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키티는 카렌의 머리에 화장수를 붓고 숱이 많은 밤색 긴 머리를 풀어 큰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무슨 근심이 있어요?” 카렌이 천진하게 물었다.     “카렌, 우리들 일, 우리의 장래 일을 이야기해보자꾸나. 지금 당장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     “무슨 말이에요?”     키티는 일어나서 거북스러운 듯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게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너는 알겠지?”     “예. 알아요.” 소녀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카라올로스에서 너를 처음 만난 그 날부터 나는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도 그걸 바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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