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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 참 하늘의 보좌 앞에 뿌려진 주님의 피

  정양모   평안 없는 종교 생활가정 형편상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던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이유로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을까? 죽으면 허무하게 그 인생이 끝나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런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친구들과 어울려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기타를 배우고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으며 등산을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항상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회사에 가서 일하고 퇴근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그리고 잠자는,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반복된 생활에서 아무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삶이 너무 허무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베개를 적시며 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의미없는 삶을 살도록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한 창조주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창조주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 보자고 결심하여 머리를 중같이 밀어버렸습니다. 모자도 쓰지 않고 생활하면서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동안 나를 새롭게 키워 보자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다 자랐어도 원래의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삶으로 돌아왔을 뿐 새로운 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봄날, 꽃나무에 아름답게 피어난 꽃봉오리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벌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그 꽃의 꿀을 빨아먹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정말 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꽃나무도 벌도 아무런 지능이 없지만, 봄이 되면 꽃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자기의 필요에 의해 꿀을 빨아 먹는 벌로 인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이 우연히 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저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20세 되던, 1969년이었습니다.저희 가족은 본래 산골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전주에 있는 중학교에 합격하자 어머니는 저의 식사 등 뒷바라지를 위해 전주에 와서 함께 사셨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예 전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던 시점에 어머니는 몸이 심하게 약해지셨습니다. 어머니는 본래 절에 다니는 불교신자셨는데, 교회에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집에서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리는,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교파의 아주 작은 교회로 병 고치고 방언하는 한국의 어느 교파와 비슷하였습니다.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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