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8월 19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11: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로마서 11:1-12)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모든 말씀이 내게 하신 말씀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누구를 향해 말씀하신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이 로마서 11장 말씀은 단순하게 보면, 어떤 기회를 놓친 사람들과 반대로 그 기회를 포착한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 개개인들과도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아닙니다.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여기 ‘내가’라는 말이 있고 ‘나도’라는 말도 있습니다. 로마서 11장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하면서 먼저 ‘나’라고 자기 자신을 넣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라는 말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민족, 조상 대대로 이어온 아브라함의 후손들 전체를 대표해서 말한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도 ‘내가’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한 ‘내가’라는 말은 유대인이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을 맡은 사도로서 한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과연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우리는 로마서 9장과 10장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로마서 9장과 10장, 11장만큼 유대인이 처해 있는 위치와 그 시대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한 내용은 찾기 힘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10장, 11장에서 자기 동족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설명하면서 ‘내가 차라리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롬 9:3 참조 그만큼 자기 동족이 구원받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 약속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배척한 사실을 굉장히 안타까워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중요한 선물을 자기 동족, 자기 민족, 자기 혈육, 자기를 낳아 준 조국이 받아야 하는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해 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바라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그것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 동족이 버렸다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동족들을 버리셨다는 이야기도 합니다.그런데 다 버리셨느냐 하면, 다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고 합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인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면 나는 어떻게 구원받았겠느냐. 나는 어떻게 구원받아서 당신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이스라엘 사람이고,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막내인 베냐민 지파라고 스스로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 버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걱정은 구약 성경에도 자주 나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민족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부서진 것을 보고 한없이 울며 예레미야애가를 기록했습니다. 선지자들 속에 있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 민족의 고난을 함께 염려했던 것입니다. 훗날 예수님도 자기 땅에 오셨을 때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 23:37) 하셨습니다.바울에게도 깊은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그의 양심이 그로 더불어 성령 안에서 증거하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롬 9:1 참조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큰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앞서 말했듯이 바울은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라고 한 말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로마서 11장 설교를 앞두고 일주일 내내 구약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이 희생되었고, 그 선지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랐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일컬어서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 1:10-11) 고 했습니다. 구원을 전했던 선지자들 속에 있는 영이, 후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받으실 고난과 고통을 미리 증거하였다는 말입니다.그러고 보면 바울이 말하는 ‘나’도 과거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사람인데 그러던 그가 변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인격을 다지고 수양을 해서 변한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들 속에 있던 하나님의 영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에 빠져 살던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속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셨고, 그때 바울은 엄청난 책임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 책임 중에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위대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동족의 구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이방인들에게 어떤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도 있었습니다.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로마서 11:2)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는 말 속에는 아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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