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 마산
엄하고 자부심 강한 아버지아버지! 제가 구원받고 난 후 늘 제 가슴 한편에 무겁게 자리잡고 계셨던 아버지의 존재. 아버지가 고인이 되신 지도 벌써 8년 4개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저희 집은 윗대부터 교회와는 거리가 먼 유교 집안이었고, 아버지 또한 매우 유교적인 분이셨습니다. 형제로는 고모님 네 분이 계셨고 아버지는 외동아들이자 장남이셨습니다. 일제 시대 때 징병을 다녀오시고 한국 전쟁에 참전해서 명예 제대를 하신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손가락을 몇 개나 잃고도 국가에서 상의용사에게 주는 혜택을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비록 다쳤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겠다는 자부심이 강하셨습니다. 성격도 불같으셔서 저는 아버지가 늘 무서웠습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가정교육을 받은 저 역시 유교적인 사상에 물들어 교회라는 곳과는 전혀 상관없이 지냈습니다.그러다가 제가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은 후 큰고모님의 인도로 1980년 4월 부산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와 남편이 구원받았고, 그 이후 동생들도 구원받았습니다. 저희 형제는 4남 1녀로 위로 오빠가 한 명, 동생이 세 명이었는데, 동생 셋이 모두 구원받은 후로 집안에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명절과 제삿날이면 온 집안이 전쟁터가 되었고 아버지로부터 큰고모님과 제가 집안을 다 망쳐놓았다며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고집이 세시고 무서운 분이어서 전도집회에 참석해 주십사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친척들, 동생들을 집회에 참석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매우 화가 나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시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는 교회 다닌다는 것들이 짜고 부모를 속여 까무러치게 만든다고, 모두 네가 시켜서 한 일이라며 펄쩍 뛰셨습니다. 알고 보니 제 바로 아래 동생이 아버지가 말씀만 들으면 구원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 집회 장소까지 오시게 하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동생이 약을 먹고 부산 병원으로 실려 갔으니 빨리 가보시라고 어떤 자매를 시켜서 아버지께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께서 부산에 가지 않고 전화로 상황을 알아보시는 바람에 거짓말이 탄로난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야단이 났고 그 모든 책임이 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너무도 황당한 일이라 아무 말도 못했고 그 후로는 친정에 잘 가지 않았습니다.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아버지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아버지께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필요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보내드리고 하니 아버지의 마음도 어느 정도 누그러지셨지만, 그래도 가끔 저나 동생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영락없이 ‘너희가 교회 다니면서....’ 하고는 꼭 교회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몸이 좋지 않아 바깥나들이를 잘 못하시는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려고, 권 목사님의 <성경은 사실이다> 테이프와 김태 전도인의 전도집회 강연 테이프를 사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 이 테이프들을 보여드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이 말씀 테이프를 보고 구원받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한 막내 동생은 울산에 살다가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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