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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 꿈 같은 사랑, 그 손길로

  신지원 | 독일   지난 7월은 내게 있어 아주 특별했다. 말로만 듣고 나름 상상하며 기다렸던 한국의 성경탐구모임, 그곳에 나의 두 아이를 데리고 참석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주일 동안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우리가 한 몸임을 느낄 수 있는 형제자매들과의 아름다웠던 교제와 달고 달았던 성경 강연과 건강 강연,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깨끗하고 정갈한 음식까지 내겐 모든 것이 축복이고 기쁨이었다.이처럼 쉬운 길을 나는 왜 그리 멀리로 돌아 이제야 왔을까....   1987년 3월, 같은 극단에 있었던 선배언니가 나를 포함한 세 명을 서울 교회 전도집회에 데리고 갔다. 아주 어렸을 때는, 동네 교회에서 성탄행사 때 주는 선물이며 그림 잘 그렸다며 상으로 주던 크레파스 등을 받는 재미에 끌려 언니와 교회에 다녔던 기억이 있다. 독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영향을 많이 받으신 아버지는 기독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늘 그들을 예수쟁이라 부르시며 비난하셨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내가 오랫동안,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주 당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내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교회에 다니는 친한 친구들이 많아 교회에 가 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따라 간 것이었지만, 나는 결코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세상에는 분명히 어떤 절대자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절대적인 존재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갖고 있었다.대학생 때는 같은 과 친구 중에 늘 웃음을 머금고 화 한번 내지 않는 천사 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그 친구를 보며 시끄러운 교회보다는 무언가 성스러워 보이고 조용한 성당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 짝사랑이었던 첫사랑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꽤나 심각했었다- 으로 괴로워하던 차에 서울의 한 성당에서 하는 예비자 교리공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몇 달간 삼위일체에 대해 공부했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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