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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믿음에서 난 의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7월 22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믿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로마서 9:30-31)       곧 믿음에서 난 의요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9:30-10:4)   로마서 9장 1절부터의 내용에는, 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들의 구원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조상들로 인해 구약 성경이 완성되었고, 자기 동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지자들의 말도 믿어왔는데도 버림받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차라리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동족들의 구원을 심히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동족들을 택하셨고 이끄셨는데도 그들이 버림받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끝부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씨를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았을 것이다. 희망 없이 완전히 망해버렸을 것이다. 버림은 받았지만 아직 조금의 희망은 있다’, 이 것이 29절까지의 내용입니다.사도 바울은 또 이야기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롬 9;14-15) 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필요하다면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들이 있는데 그 그릇은 바로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4)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택하셨지만 그들은 택함 받은 민족이면서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아닌 이방인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대인 중에서 부름을 받은 사람, 이방인 중에서 부름을 받은 사람이 하나의 옳게 쓰일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진다는 내용입니다. 때문에 로마서 9장 24절에서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9장 30절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사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그들이 믿고 따르고 있는 그 행위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게 한 그 행위도 문제지만, 행동에 옮긴 것보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따르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 30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하나님의 의와 상관없는, 즉 하나님과 관계없고 율법과도 관계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이방인들은, 물론 종교적인 열심은 있었겠지만 의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의에 비추어 봤을 때는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유대인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약속도 없고 율법도 없고 아무것도 없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얻었을까요? 3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는데 그 의는 믿음으로 좇아난 의라고 했습니다.   의의 법을 좇아 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로마서 9:31)   이스라엘인들은 의의 법을 좇아, 의의 법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과 약속이 있었고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은 의의 법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왜 실패했을까요? 왜 버림을 받았을까요? 그 민족이 추구하던 의는 지켜서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능가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의를 별로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 64:6)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비추었을 때 인간의 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무엇을 잘해서 하나님 앞에 얻을 수 있는 의는 없었습니다. 믿음에서 난 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무엇인가 행위를 잘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를 얻으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더 철저히 의롭게 살고자 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의의 법을 좇아갔으나 그 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찾고 매달린 그들이 왜 놓치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전혀 무관한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쟁취했습니까? 사도 바울의 그치지 않는 근심, 양심의 고통, 그 마음의 고통이 여기 로마서에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 의의 법을 좇아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 3:6) 고 했습니다. 자신의 이런 대단한 신앙심은 자기 동족들의 신앙심과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심으로는 결국 하나님의 법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로마서 9:32)   ‘어찌 그러하느냐.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았다. 믿음에 기대지 않고 행위에 기댔다. 부딪힐 돌에 부딪혔다.’ 의지한다는 것은 ‘맡긴다, 모든 것을 신뢰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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