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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나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

손광자 | 안성       교제 가운데 지내온 지 23년 만에 구원받았다고 하면, 오래 전부터 저를 보아 오신 분들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구원받지 못한 고통을 드러내 놓고 살아온 날들과 구원받았다고 여기고 교제 안에서 어정쩡하게 살아온 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87년 수양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올해 수양회에서 구원받기까지, 그간의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난 저는 어릴 때부터 허약하고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구원받은 큰언니는 먼저 아버지부터 수양회에 모시고 가는 등 친정 식구들에게 전도를 시작했는데, 저는 언니가 가져다준 지구 멸망에 관한 책자들을 보고 너무 무서워 나도 빨리 수양회에 데려가 달라며 졸랐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참석한 청주에서의 수양회에서는 북적거리는 수많은 인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저는 권 목사님의 말씀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 채 <휴거> 영화를 보고 두려움만 안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고향에서의 전도집회에 참석하였는데 ‘예수님의 세마포’라는 사진을 보고 눈물이 나서 저는 그것이 구원인 줄 알고 간증을 했습니다. 이후 순천에서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활동을 하였는데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였고 이듬해 수양회에 참석하였지만 구원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가서 권 목사님의 설교를 직접 들으면 정리가 될 것 같아 서울로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하였고 수원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언니와 자취하며 수원으로 통학을 하였습니다.처음 참석한 서울 대학생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에 저는 구원받았다고 간증을 둘러댔습니다. ‘구원이 헷갈리기는 하지만 일단 받았다고 해 두자. 그래야 학생들 모임에 잘 나갈 수 있지.’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 두렵고 양심이 괴로웠습니다. 이후 한 달여간 대학생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여름 활동을 하면서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주위에서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교회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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