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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같은 믿음을 가진 교제를 찾기까지

  석대현 | 대전   내 나이 61세. 41년 전 찬송가를 부르던 중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음이 믿어지는 기적을 경험한 행복했던 그 날이 엊그제 같습니다. 1969년 2월 21일 금요일 자정을 전후한 시간에, 지금은 문경읍으로 이름이 바뀐 점촌읍 어느 교회의 마룻바닥에서 여러 교인들과 철야기도를 하며 찬송가를 부르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 살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적열아홉 살에 재수를 준비하던 중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는 책의 저자인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의 간증을 읽고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완전한 변화>라는 전도지에 실린 치니퀴 신부의 간증은, 제 자신이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있지 않은 사람인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저는 아버지께서 운명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40여 일간 장티푸스와 위문맥폐쇄증을 앓으시다 운명하셨는데 사람이 죽는 모습을 처음 본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운명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장티푸스로 인해 입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아무 말씀도 못하셨지만 손으로는 찬송가의 박자를 맞추시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셨고, 소망에 찬 웃음을 띠고 계셨습니다. 훗날 어머니가 구원받으신 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아버지께서는 병환 중에 어느 주일날 교회에 다녀오시더니 어머니께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로마서 8장 1절을 읽어 주시오. 여보, 이 말씀이 정말 좋지 않소? 나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소. 이제 나는 천국 갈 자신이 있소.’ 하시면서 한없이 우셨답니다.하지만 1968년 12월 아버지가 하나님께로 가는 모습은 열아홉의 제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밤과 어두움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저를 덮쳤습니다. 모태부터 교인이며 세례도 받았고 성가대원이며 주일학교 반사요 청년회장까지 하면서도 참으로 예수님을 믿지 못해 천국 갈 자격이 없는 죄인인 내 자신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는데, 우선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지옥에 안 가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확신이 없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고 있으니 마음이 평안해야 하는데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아 새벽 기도를 다니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믿게 해 주십시오.’만이 저의 기도였습니다. 이 상태로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고 그 사실이 두려워진 저는 교통사고의 위험을 피해 항상 길 안쪽으로 다녔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믿음 좋은 청년이라며 청년회장직까지 맡겼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 무렵 용문산 기도원의 방언하는 사건으로 감리교회 목사님까지 방언하신 일이 물의가 되어, 제가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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