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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 엑소더스 12회

레온 유리스     3편  주먹에는 주먹으로       “...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애굽기 21:23-25)       6장     런던, 해외 문제 연구소 채탐 하우스     중동문제의 권위자 세실 브래드쇼는 여러 곳에서 보내온 관련 조사 보고서들을 꼬박 사흘 동안 훑었다. ‘휴,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군.’ 그는 충혈된 눈을 비볐다. 모든 것이 말이 아니었다.       카이로에 망명하고 있는 무프티 하지 아민 엘 후세인이 아랍 고위 위원회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종교적인 폭발을 두려워한 나머지 후세인을 전범으로 기소하지 않았던 우리 처사는 지금 우리에게 괴로움을 가져오고 있다. 아랍의 태도는 완전히 이성을 무시한 것이다. 그들은 미리 제시된 조건에 대한 합의가 있을 때까지 유대인과 같은 회의 장소에 앉기를 거부하고 있다.       브래드쇼는 성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를 뒤흔들어 놓은, 빈번해진 테러리스트의 습격 사건들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다. 영국의 이익은 아랍과 한 패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한 브래드쇼는 드러내놓고 반유대주의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정작 영국을 난처하게 만드는 쪽은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아랍 족들이었다. 돈만 쏟아 붓고 사상자만 내는 중동 정책 때문에 그들은 자국인들에게나 주변 우방국들로부터 비난까지 받고 있었다. 영국의 권위는 날로 날로 떨어져갔다.     ‘아,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아니, 과연 풀려지기나 할 것인가?’     세실 브래드쇼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동 문제 해결사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단연코 ‘아니다’ 였다. 이제는 자신을 출세가도로 이끌어 주었던 이 일에서 그만 손을 떼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대인들은 알 수 없는 족속이었다. 영국에 협조를 잘 해주는 듯 하다가도 문제가 발생하면 유대인들 때문에 결국 팔레스타인 신탁통치 문제는 벽에 부딪치고 미궁 속으로 곤두박질을 치곤 했다.     관계(官界)에서는 브래드쇼가 엑소더스 사건 이후 유대인들과 싸우느라고 입맛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팔레스타인 신탁통치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작은 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에게 있어서 팔레스타인은 하이파 해군 기지와 정유소, 그리고 수에즈 대동맥과 그 지리적 관계 때문에 기어이 붙잡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었다.     책상 위의 인터폰이 울렸다.     “테버 브라운 대장이 오셨습니다.”     브래드쇼와 테버 브라운은 냉랭하게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테버 브라운은 관에서 몇 사람 안되는 친 유대파의 한 사람이었다. 엑소더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브래드쇼에게 위탁 통치령의 운명도 다 되었다고 말하고, 단식 투쟁에 앞서 엑소더스 호의 출항을 허가하라고 권고한 것도 바로 그였다. 바로 이 사무실에서 말이다. 유대인은 믿을 수 있는 충실한 동맹자이나 아랍인은 그렇지 못하므로 영국이 지지해야 할 사람은 아랍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이 다스리는 영국 연방 국가로 만들 것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브래드쇼나 채탐 하우스의 사람들의 입장을 흔들지는 못했다. 유전과 수에즈 운하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아랍측의 위협에 대한 거리낌이 무엇보다도 큰 장애물이었다.     “보고서를 읽고 있었소.” 브래드쇼가 말했다.     테버 브라운은 시거 한 개를 피워 물었다. “예. 아주 재미있지요. 유대인들이 뒷걸음질해서 바다 속에나 들어가 주어야 우리가 고맙다고 할 판인데.” 브래드쇼는 테버 브라운 대장의 비꼬는 말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몇 주일 안으로 건의서를 내야 하오. 내 생각에는 헤이븐 하스트를 유임시켜 좀 더 유대인에게 강경책을 써야 할 것 같소.” 그는 머뭇거리다가 책상 위로 테버 브라운에게 서류 한 장을 넘겨주었다. 팔레스타인 영국군 사령관 아놀드 헤이븐 하스트 대장 앞으로 갈 서신이었다.       귀관이 사태의 즉각적 수습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본인은 이 문제를 UN에 이관시키자는 건의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사태는 악화되었다.       “좋은 생각이오. 브래드쇼 당신이 괴기소설의 애독자라면 헤이븐 하스트가 앞으로 제출할 의견에 꽤 흥미를 느끼리라는 것을 장담하겠소.”       팔레스타인 사페드     엑소더스 사건이 있은 후 브루스 서덜랜드 준장은 아예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갔다. 북부 갈릴리 훌레 계곡과 가까운 사페드 부근의 카난 산 위에 자리를 잡았다. 브루스 서덜랜드는 마침내 평화를 찾았다. 모친 별세 이후 여러 해 동안 겪었던 고통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처음으로 그는 두려움 없이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다.     서덜랜드는 카난 산 위에 있는 훌륭한 별장을 하나 샀다. 공기는 팔레스타인에서 제일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항상 여름의 더위를 쫓아주는 곳이었다. 그는 붉은 지붕을 인 대리석 바닥의 하얀 집 뒤편에 수백 그루의 갈릴리 장미를 심었다.     뒷마당에서 보는 골짜기 저편 사페드의 경치는 숨을 앗아 가도록 눈부셨다. 그는 지난 모든 일을 잊은 채 오로지 팔레스타인 제일이라고 하는 그의 장미밭을 가꾸고 성지를 순방하고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공부하고 사페드의 거미줄 같은 골짜기 길을 하릴없이 걸어 다니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서덜랜드는 하조르를 구경하려고 북쪽으로 갔다가 간 다프나에 들렀는데 거기서 우연히 리베르만 박사와 키티 프레몬트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곧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키티에게 있어서나 서덜랜드에게 있어서나 키프로스를 떠난 이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덜랜드는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그는 키티의 권유로 가난한 어린 아이들이 사페드에 있는 자기 집을 방문하는 것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짧은 시간에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오후, 간 다프나에서 집으로 돌아 온 서덜랜드는 예전의 부관이었던 프레드 칼드웰 소령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프레디 아닌가? 언제부터 팔레스타인에 와 있었나?”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어디서 근무를 하나?”     “예루살렘의 정보부입니다. CID와의 연락 사무소 일을 맡아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인사 이동이 있었지요. 우리 가운데 하가나에 협조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마카비들에게도요.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서덜랜드에게 있어서 그 일은 어처구니 없는 일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사실은 각하,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한 번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만 오늘 제가 온 것은 인사를 드리려고 온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전에 각하를 모신 일이 있다고 해서 헤이븐 하스트 대장께서 특별히 저를 각하께 보낸 것입니다.”     “그래?”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지금 영국인 정비 요원을 팔레스타인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폴리(Polly) 작전을 진행 중입니다.”     “폴리(Polly) 작전이 아니라 머저리(folly) 작전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지.”     프레디는 서덜랜드의 비꼬는 말을 듣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헤이븐 하스트 장군은 각하의 계획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내게는 아무 계획도 없네. 여기가 내 집이야. 나는 내 집에 머물러 있을 생각이야.”     “각하, 제가 말씀 드리려는 것은 일단 정비 요원의 철수가 끝나고 나면 각하의 신변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헤이븐 하스트 장군의 말씀이십니다. 각하가 이곳을 떠나지 않으신다면 저희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칼드웰의 말에는 은근한 암시가 있었다. 서덜랜드의 경향을 아는 헤이븐 하스트는 그가 하가나와 협조할 것을 꺼리고 있었다. 헤이븐 하스트는 사실 서덜랜드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서 헤이븐 하스트에게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나도 그 사람 입장을 잘 알고 있다고 전하게.”     말을 마치자마자 서덜랜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프레디는 무언가를 더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서덜랜드는 단호하게 뒤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집으로 들어간 서덜랜드는 그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육체적인 위험에 처해 있었다. 마카비들이 그를 쉽게 해치는 일은 없겠지만, 카난 산에서 혼자 살면서 아랍인 친구를 가지고 있는 퇴역 영국군 준장에게 반감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브루스 서덜랜드는 마당으로 나갔다. 이른 봄, 장미가 만발해 있었다. 그는 골짜기 저편의 사페드를 넘겨다보았다. 그가 평화와 위안을 얻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무서운 공포도 다 사라졌다. 그는 내일이든 언제든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서덜랜드의 집을 떠난 칼드웰의 차는  얼마 후 태가트 요새로 들어섰다.     “칼드웰 소령, 오늘 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시겠소?”     CID 수사관이 물었다.     프레디는 시계를 보았다. “그럴 생각이오. 지금 떠나면 저녁이 되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지.”     “됐소. 예루살렘 CID로 데려가서 신문해야 할 포로가 한 사람 있소. 마카비인데 위험한 자요. 우리가 이곳에 가두고 있다는 것을 마카비들이 알고 그놈을 수송하는 열차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래서 당신 차로 보내는 것이 안전할 것 같소.”     “그렇게 하겠소.”     “그 녀석을 끌어내 와.”     두 병사가 묵직한 쇠사슬로 손발이 묶인 열 네댓 살 된 소년을 끌고 왔다. 입은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다. 얼굴은 매질로 상처 투성이였다.     수사관이 포로 앞으로 갔다. “벤 솔로몬이라는 놈인데 얼굴이 순하게 생겼다고 속지 마시오. 나이는 어려도 아주 위험한 놈이니까. 어젯밤에 무기를 훔치려고 수류탄으로 경찰 두 사람을 죽인 놈이오.”     벤 솔로몬은 수사관을 멸시하듯 노려보면서 조용히 서 있었다.     “칼드웰 소령, 입마개는 그대로 두시오. 떼어냈다가는 언제 찬송가를 부를지 모른다오. 아주 광신자라니까.”     한결같이 노려보는 소년의 눈초리에 화가 난 수사관은 한 걸음 내딛더니 소년의 입을 주먹으로 쳤다. 소년은 피투성이가 되어 사슬에 얽힌 채 방 안을 나뒹굴었다.     “끌고 나가!” 수사관은 신경질이 난 소리로 외쳤다.     소년을 차 뒷칸의 바닥 위에 엎드리게 했다. 무장한 병사 한 사람이 그와 함께 뒤에 타고, 칼드웰은 운전수 옆 좌석에 앉았다. 그들은 차를 몰고 태가트 요새를 나왔다.     “더러운 놈의 새끼.” 운전수가 중얼거렸다.     “내 친구도 지난 주일에 당했어.” 뒷좌석의 병사가 중얼거렸다. “좋은 녀석이었는데, 부인도 있고 아기도 있었어. 마카비 놈들에게 머리를 직통으로 얻어맞았거든.”     칼드웰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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