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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김윤균 | 용인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겨울, 여동생이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버지께서는 세 달 정도를 아프시더니 네 남매와 어머니를 남겨 둔 채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누이는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사나!” 하며 땅을 치며 우셨다. 그 당시 우리는 동대문 밖 숭인동에서 살았는데, 청계천 변에 난민 판자촌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곳은 도둑질이 매우 심해 수도 계량기 뚜껑, 전기 계량기, 빨래까지도 여러 차례 도둑을 맞았고, 심지어 큰 누이의 교복까지도 도둑 맞아 큰 누이는 코트를 입고 졸업식에 가야 했다. 그런 누이가 친척의 소개로 서울공대 출신의 매형에게 시집을 가서, 강원도 예미에 있는 석탄 공사 현장의 사택에서 살게 되었다.우리 가족의 모든 소망이 누이에게 달려 있었는데 5대 독자였던 매형은 36살의 나이에 4살, 2살의 아이들을 남겨 두고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사돈어른과 어머니가 그렇게 살려 달라고, 손과 무릎이 닳도록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는데도 말이다. 그 후 내가 고등학교 진학 시험에 떨어지고, 또 대학 입학 시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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